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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일기와 기도

2026년 10월 9일 복음 묵상|비운 마음을 말씀과 사랑으로 채우는 법, 루카 11,15-26 묵상 :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와 있다는 뜻, 갈라티아서 3,7-14와 오늘의 복음 말씀 : 믿음으로 사는 노년의 하루

말씀을 듣고 감사와 기도로 마음을 채우는 하루를 표현합니다.

마음을 비우는 것 다음에 필요한 일

비운 마음에 무엇을 받아들일지 생각하는 도입 장면입니다.

마음을 편하게 하려면 내려놓으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지나간 잘못, 가족에 대한 서운함,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습관을 내려놓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내려놓겠다는 결심만으로 마음이 오래 평온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한동안 잊었던 걱정이 저녁이면 되살아나고, 이미 지나간 말 한마디가 다시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루는 데에는 또 하나의 질문이 필요합니다. 비워 낸 자리에 무엇을 맞아들이고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2026년 10월 9일 연중 제27주간 금요일의 복음은 루카 11장 15절부터 26절입니다. 제1독서는 갈라티아서 3장 7절부터 14절입니다. 오늘은 성 디오니시오 주교와 동료 순교자들 또는 성 요한 레오나르디 사제를 기억할 수 있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전례 정보와 장절을 기준으로 쓴 개인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을 따라, 마음을 정돈하는 일을 넘어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길을 살펴보려 합니다.

나이가 들면 할 일이 줄어 마음도 한가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녀의 사정, 건강의 변화, 오래된 관계의 상처 때문에 마음이 더 복잡해질 때도 있습니다. 이런 걱정이 있다는 이유로 믿음이 부족하다고 판단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걱정이 찾아올 때 어디로 향하는가입니다. 같은 생각을 혼자 되풀이하는 자리에서 잠시 벗어나, 주님께 도움을 청하고 작은 사랑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좋은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

자기 판단 때문에 예수님의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을 묵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일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시는 일을 악의 힘으로 설명하려고 합니다. 다른 이들은 표징을 요구합니다. 예수님의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의 의심을 유지하려는 태도가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라진 나라와 집안은 무너진다는 말씀으로 그 주장의 모순을 보여 주십니다. 악이 자기 자신을 몰아낸다는 설명으로는 예수님의 구원 활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장면은 오늘 우리에게도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누군가의 선한 행동을 인정할 수 있는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도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가. 가족이 조금 나아지려고 애쓸 때 그 변화를 알아차리고 있는가. 상대를 무조건 믿으라는 뜻은 아닙니다. 필요한 분별을 하면서도, 예전의 판단이 오늘의 좋은 일까지 가려 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자는 뜻입니다.

이를테면 오랫동안 무뚝뚝하던 가족이 먼저 안부를 묻는 날이 있습니다. 그때 예전에는 왜 그렇게 했느냐고 따지기보다, 오늘 연락해 주어 고맙다고 말해 볼 수 있습니다. 과거의 문제를 모두 해결하는 말은 아니지만, 관계가 새롭게 시작할 작은 자리를 만듭니다. 감사는 잘못을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주어진 좋은 것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예수님 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구원 활동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나라를 표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일이 하느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와 있다는 뜻을 알려 주십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단순히 어떤 장소를 가리키는 표현으로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느님께서 다스리시고 구원하시는 현실을 뜻합니다. 그 구원은 예수님 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악의 지배에서 사람을 풀어 주시는 일이 그 사실을 드러냅니다.

하느님의 손가락이라는 표현 역시 거대한 손의 모습을 상상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능력이 작용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성경의 표현입니다. 이어지는 힘센 사람의 비유도 예수님의 구원 능력이 악을 이긴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합니다. 따라서 오늘의 초점은 악의 모습을 자세히 그려 보는 데 있지 않습니다. 악보다 강하신 주님을 신뢰하고 그분께 가까이 머무는 데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좋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서 먼저 주어진 구원을 믿고, 감사와 기도와 작은 사랑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비워 낸 마음에 주님을 모신다는 것은 특별한 감정을 만들어 내는 일이 아니라, 오늘의 말과 행동에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이 차이를 기억하면 신앙의 부담이 가벼워집니다. 내가 모든 사람을 변화시켜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완벽한 평화를 만들어 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께서 먼저 이루시는 일을 믿고 내 자리에서 응답하면 됩니다. 화가 날 때 한 번 숨을 고른 뒤 말하는 것,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는 것,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오늘 할 수 있는 응답입니다.

비어 있는 집을 오늘의 마음에 적용하기

마음을 비운 뒤 주님과의 관계 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묵상을 돕습니다.

복음 마지막에는 더러운 영이 나갔다가 비어 있는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더 나쁜 상태가 되는 결말은 경각심을 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경고를 일상의 모든 어려움이나 질병이 악령 때문이라는 주장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우리의 신앙적 응답을 묻습니다. 주님께서 베푸시는 해방을 받아들이면서도 그분과의 관계를 비워 두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합니다.

개인 묵상으로 적용해 보면, 나쁜 습관을 멈추는 일에 좋은 습관을 이어 붙일 수 있습니다. 남을 흉보는 시간을 줄였다면 그 사람을 위한 짧은 기도를 시작합니다. 비교하는 화면을 덜 보게 되었다면 감사할 일 세 가지를 적어 봅니다. 걱정을 내려놓기로 했다면 주님께 맡긴다는 말을 천천히 해 봅니다. 무엇을 없앨지만 생각하던 생활이, 무엇을 받아들일지 선택하는 생활로 바뀝니다.

이 방법은 마음을 억지로 밝게 만들라는 요구가 아닙니다. 슬픈 날에는 슬프다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화가 난 날에는 화가 났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감정을 주님과의 관계 밖에 혼자 남겨 두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 한 구절을 읽고,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는 작은 시간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 기도를 다 하지 못했더라도 다시 돌아갈 자리는 열려 있습니다.

믿음은 성적표가 아니라 은총에 대한 응답입니다.

자신의 공로를 계산하기보다 하느님의 은총에 기대는 모습을 담습니다.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믿음으로 사는 이들이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복이 다른 민족들에게 전해지고, 믿음을 통해 약속된 성령을 받게 된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이 말씀을 읽을 때는 내 신앙 활동의 양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계산하려던 습관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먼저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아 성당 봉사를 줄였을 때 마음이 허전할 수 있습니다. 기도 중에 집중이 흐트러져 자신을 나무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활동량이 줄었다고 사랑받는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처럼 모든 길을 알아서가 아니라 하느님을 믿으며 응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할 수 있는 기도가 짧다면 그 짧은 기도 안에서 진실하게 도움을 청하면 됩니다.

그렇다고 믿음이 선한 행동을 생략하는 이유가 되지는 않습니다. 은총을 믿는 사람은 그 사랑을 생활로 드러내려고 합니다. 다만 선행을 점수처럼 쌓아 남보다 낫다는 근거로 삼지 않습니다. 오늘도 도움을 받았으니 나도 누군가를 돕겠다는 마음으로 움직입니다. 감사와 겸손이 함께할 때 우리의 실천은 부담스러운 의무를 넘어 받은 사랑을 나누는 일이 됩니다.

금요일의 실천: 감사, 참회, 작은 화해

가까운 가족에게 사과와 고마움을 전하는 작은 화해입니다.

오늘은 세 가지 질문을 천천히 던져 보세요. 누구에게 도움을 받았는가. 내 말이나 행동에서 무엇을 돌아볼 것인가. 내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무엇을 주님께 맡길 것인가. 세 질문에 모두 긴 답을 쓸 필요는 없습니다. 한 가지씩만 떠올려도 충분합니다. 감사는 받은 것을 기억하게 하고, 참회는 다시 사랑할 방향을 정하게 하며, 의탁은 혼자 짊어진 걱정을 주님께 가져가게 합니다.

생활 사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한 시니어가 아침에 배우자에게 날카롭게 말했습니다. 저녁까지 마음이 불편하지만 먼저 말을 꺼내기가 어렵습니다. 이럴 때 오늘 아침에는 내 말이 거칠었어요, 미안해요라고 짧게 전할 수 있습니다. 곧바로 변명이나 상대의 잘못을 붙이지 않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화해를 시작하는 말은 상대에게 답을 강요하기보다 내가 돌아본 것을 정직하게 밝힙니다.

오래 연락하지 않은 친구에게 안부를 묻는 것도 좋은 실천입니다. 꼭 많은 시간을 내지 않아도 됩니다. 문득 생각이 나서 연락했어, 평안하게 지내기를 바란다는 한마디를 전할 수 있습니다. 직접 만남이나 연락이 부담스럽거나 적절하지 않은 관계에서는 먼저 기도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실천은 모든 관계를 급하게 복원하는 일이 아닙니다. 내 상황에서 가능한 선한 선택을 하는 일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하루를 마무리하기

하루를 주님께 맡기는 기도입니다. 기도자는 십자고상과 제대를 바라봅니다.

마태오라디오는 오늘 미사에 참례하지 못하거나, 복음 말씀을 다시 한 번 더 듣고 싶은 형제 자매님들에게 디지털 콘텐츠로 전합니다. 매일 말씀을 듣는 시간은 살아 계신 예수님을 만나고 삶의 중심을 다시 세우는 시간입니다. 처음과 끝이신 알파와 오메가의 지혜 안에서 하루를 돌아보면, 내가 옳다는 생각만 붙잡던 마음이 조금씩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정직하게 고백하고, 주어진 삶을 주님 안에서 받아들이는 순명도 배워 갑니다.

잠들기 전에는 성경을 가까이에 두고 한 구절을 천천히 읽어 보세요. 감사할 일을 떠올리고, 미안한 마음을 고백하고, 내일의 걱정을 맡깁니다. 말씀을 듣는다고 언제나 바로 잠들거나 불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혼자 되풀이하던 생각을 주님께 말씀드리고 하루를 맡기는 기도의 자리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매일의 말씀 안에서 우리는 살아 숨 쉬는 부활을 체험합시다. 넘어졌어도 다시 사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오늘의 생활에 담아 봅시다.

주님, 제 마음의 빈자리에 머물러 주십시오. 원망을 줄인 자리에 감사가 자라게 하시고, 판단을 멈춘 자리에 이웃을 위한 기도가 이어지게 하소서. 제 부족함을 숨기거나 점수로 계산하지 않고 당신의 은총을 믿게 하소서. 오늘 사과할 용기와 고마움을 표현할 마음을 주십시오. 해결하지 못한 일은 당신께 맡깁니다. 당신의 사랑 안에서 쉬고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 마음에 채우고 싶은 한 가지를 정해 보세요. 성경 한 구절, 감사 한마디, 누군가를 위한 기도 가운데 작은 것 하나면 좋습니다. 그 한 가지가 하루의 방향을 주님께로 돌리는 시작이 되기를 바랍니다.

 

고감사, 참! 고맙고, 감사하며,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