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조용한 집과 평안한 마음은 같은 것일까요?

가족 모임을 마치고 돌아와 오래 마음이 쓰인 적이 있으신가요? 그 자리에서는 웃고 넘어갔지만 집에 와서는 누군가의 말이 다시 떠오릅니다. 반대로 내가 옳다고 믿는 말을 했는데 상대의 표정이 굳어 버려 마음이 불편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갈등을 피하고 싶고, 동시에 진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이 두 바람을 함께 지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2026년 10월 22일 연중 제29주간 목요일의 복음은 바로 그 마음에 어려운 질문을 던집니다. 루카복음 12장 49절부터 53절에서 예수님은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오셨다는 말씀과 함께 분열을 언급하십니다. 평화를 바라는 사람에게 낯설게 들리는 대목입니다. 이 말씀을 자극적인 한 문장으로 떼어 내기보다, 예수님을 따르는 선택과 그 선택을 살아가는 태도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에페소서 3장 14절부터 21절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신자들이 사랑에 뿌리내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가도록 기도합니다. 복음이 결단의 어려움을 보여 준다면, 독서는 그 결단이 어디에 뿌리를 두어야 하는지 묵상하게 합니다. 이 글에서는 두 말씀을 따라 가정과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길을 찾아봅니다.
2. ‘분열’은 가족을 미워하라는 명령일까요?

복음에는 한집안의 가족들이 서로 갈라지는 장면이 예고됩니다. 혈연으로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라도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데 서로 다르게 응답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선택은 주변 사람 모두에게 언제나 환영받는 선택은 아닙니다. 신앙을 지키는 일이 관계의 긴장을 가져올 수 있다는 무게를 이 말씀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일부러 분란을 만들거나 가족을 미워해도 된다는 결론을 끌어내서는 안 됩니다. 상대가 내 의견에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을 믿음 없는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것도 신중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이 말하는 제자 됨의 결단과, 일상에서 내가 겪는 모든 의견 차이는 그대로 같은 것이 아닙니다. 내 고집이나 오해 때문에 생긴 갈등도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 구별은 실제 생활에서 중요합니다. 가족이 내 신앙을 이해하지 못할 때에도 안부를 묻고 생활을 돌보는 사랑은 계속할 수 있습니다. 함께 미사에 가자는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대화를 끊을 필요는 없습니다. 믿음은 상대를 통제하는 수단이 아니라 내 삶이 어떤 방향을 향하는지 보여 주는 선택이어야 합니다. 말과 행동의 일치가 쌓일 때 신앙의 뜻도 더 분명하게 전해질 수 있습니다.
3. 불과 세례 앞에서 나부터 돌아보기

예수님은 불을 말씀하시고, 당신이 받아야 하는 세례를 언급하십니다. 이 문맥에서 세례는 다가오는 수난과 죽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감당할 길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다른 사람에게만 희생을 요구하는 모습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 사랑의 길을 끝까지 걸으시는 분으로 이 대목을 묵상하게 됩니다.
불의 이미지는 오늘 내 삶을 비추는 묵상의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성경의 상징을 하나의 생활 비유로 모두 설명했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서는 다른 사람을 향한 공격의 불이 아니라, 내 안의 무관심과 거짓을 드러내는 빛을 떠올려 봅니다. 잘못된 말에 편승한 일, 진실을 알면서도 외면한 일,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사과를 미룬 일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가족 단체 대화방에서 보았다고 합시다. 누구나 그러더라는 말만 믿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 전에 잠시 멈출 수 있습니다.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면 전달하지 않는 선택도 가능합니다. 분위기를 맞추는 일보다 사실을 귀하게 여기는 작은 실천입니다. 이때 잘못 전달한 사람을 공개적으로 망신주기보다, 확인이 필요해 보인다고 차분히 알릴 수 있습니다.
4. 사랑에 뿌리내린다는 말의 생활 속 의미

에페소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신자들의 내적 인간이 성령의 힘으로 굳세어지고,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마음 안에 사시기를 청합니다. 여기에서 힘은 단지 목소리를 높여 상대를 누르는 능력으로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아갈 내면의 힘을 묵상하게 하는 기도입니다.
나무의 뿌리는 눈에 띄지 않지만 나무를 붙듭니다. 사람에게도 말과 행동을 지탱하는 내면의 방향이 있습니다. 내가 인정받는 일만 가장 중요하게 여기면 작은 반대도 견디기 어렵습니다. 사랑받고 있다는 믿음 안에 머물면 상대의 의견을 들을 여유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신앙이 깊으면 감정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시 주님께 가져가는 일이 필요합니다.
“진실을 말할 때에도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태도는 포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랑에 뿌리내린 믿음은 내 의견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그 의견을 전하는 말과 표정까지 돌아보게 합니다. 오늘의 목표는 대화에서 반드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양심을 지키면서도 상대의 존엄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경험이 풍부해지지만 듣는 일이 저절로 쉬워지지는 않습니다. 자녀의 이야기를 듣다가 답을 이미 안다는 생각이 들어 말을 끊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조언을 잠시 늦추고 그때 마음이 어땠는지 물어보면 어떨까요? 상대가 원한다면 내 경험을 나누되, 다른 상황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도 인정합니다. 경청은 세대 사이에 마음이 오갈 자리를 마련합니다.
5. 참아 온 마음에도 존중이 필요합니다.

갈등을 피하려고 늘 침묵해 온 분도 계실 것입니다. 집안 분위기를 생각하고, 자녀가 힘들까 걱정하고, 내가 나이가 많으니 참아야 한다고 여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편한 감정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사랑 없는 행동은 아닙니다. 마음을 계속 숨기기보다 서로 존중할 수 있는 대화 방식을 찾아보는 것이 관계를 돌보는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상대의 인격을 평가하는 말보다 내가 겪은 일을 설명하는 말이 도움이 됩니다. 당신은 늘 무례하다고 말하기보다, 방금 그 표현은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고 말해 봅니다. 내가 원하는 대화도 덧붙일 수 있습니다. 서로 목소리를 낮추고 이야기하고 싶다는 말입니다. 감정이 높아져 제대로 듣기 어렵다면 잠깐 쉬었다가 대화를 이어갈 시간을 정할 수도 있습니다.
한 번 잘 말한다고 오랜 갈등이 모두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상대의 반응이 기대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내가 실패한 신앙인이라고 단정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관계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상황에 따라 다른 사람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사랑을 실천한다는 이유로 내 존엄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상대의 존엄 또한 같은 무게로 바라보는 연습을 해 나갑니다.
6. 오늘 실천할 세 가지와 저녁의 성찰

첫째, 말을 하기 전에 잠시 멈춥니다. 지금 꼭 전해야 할 사실이 무엇인지, 내 체면을 지키기 위해 말을 보태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봅니다. 둘째,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습니다. 내 대답을 준비하느라 중요한 사정을 놓치지 않았는지 확인합니다. 셋째, 지켜야 할 생각은 차분히 설명하고, 불필요하게 깎아내리는 표현은 덜어 냅니다. 말의 내용과 말하는 태도를 함께 돌보는 실천입니다.
예를 들어 오후에 배우자나 자녀와 차를 마실 때 오늘은 먼저 한 가지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요즘 가장 마음이 쓰이는 일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것입니다. 대답을 듣는 동안 바로 해결책을 내놓지 않습니다. 그랬다면 많이 힘들었겠다고 마음을 확인한 뒤, 필요하면 내 생각도 나눕니다. 짧은 대화라도 상대가 충분히 들었다고 느낄 자리를 만들어 봅니다.
저녁에는 세 문장으로 하루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 잘 들은 이야기는 무엇이었는지, 말투를 고치고 싶은 장면은 무엇이었는지, 내일 이어가고 싶은 행동은 무엇인지 적습니다. 잘한 일을 하나 기억하는 것도 좋습니다. 성찰은 자신을 비난하는 시간이 아니라 주님 앞에서 다음 걸음을 찾는 시간입니다. 사과할 일이 있다면 길게 변명하기보다 내가 거칠게 말한 부분을 인정해 봅니다.
7. 해결되지 않은 대화도 주님께 맡기며

오늘의 복음은 우리를 쉬운 동의만 찾는 삶에서 깨우며, 제1독서는 그 길의 뿌리를 사랑에 두도록 기도하게 합니다. 타인의 반응을 모두 바꾸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내가 할 수 있는 행동부터 시작해 봅니다. 사실을 확인하는 일, 한 사람을 끝까지 듣는 일, 거친 말을 사과하는 일은 작지만 구체적인 선택입니다. 그렇게 믿음은 추상적인 다짐에서 일상의 태도로 옮겨 갑니다.
함께 기도합니다. 하느님 아버지, 저희가 당신 사랑에 뿌리내리게 하소서. 성령으로 속사람을 굳세게 하시고, 마음 안에 그리스도를 모시게 하소서. 진실을 피하지 않을 용기와 이웃을 낮추지 않을 겸손을 주소서. 오늘 풀지 못한 가족의 걱정도 맡기오니, 저희가 내일 다시 사랑을 선택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주님! 늘 흠숭하나이다. 아멘.
오늘은 누군가를 이겼는지보다 사랑으로 말하려고 노력했는지를 돌아보면 어떨까요? 아직 완성되지 않은 대화가 있어도 하루의 끝을 감사로 맺을 수 있습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선을 시작하고 남은 시간은 주님께 맡겨 봅니다.
고감사, 참! 고맙고, 감사하며,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