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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일기와 기도

8월 24일 오늘의 복음 묵상: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과 거짓 없는 마음의 신앙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의 복음 말씀을 가정 안에서 실천하는 노부부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1. 괜찮다는 말 뒤에 숨겨진 마음

괜찮다는 말 뒤에 숨겨진 시니어의 외로움과 솔직한 마음을 표현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기 어려워질 때가 있습니다. 자녀가 안부를 물으면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괜찮다고 답합니다. 배우자에게 서운한 마음이 있어도 오랜 세월 함께 살아왔으니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아 불안한 날에도, 마음이 유난히 허전한 저녁에도, 우리는 종종 평소처럼 웃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오래 마음을 숨기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조차 무엇이 힘든지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비슷한 일이 생깁니다. 기도는 드리지만 정작 마음속 두려움은 꺼내지 못합니다. 성당에서는 반갑게 인사하면서도 집에 돌아오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차갑게 말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의 복음은 바로 이러한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주님 앞에서 얼마나 솔직한 사람인가? 그리고 내 믿음은 가장 가까운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가?

 

2.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와 나타나엘의 만남

필립보가 나타나엘의 의심을 다툼으로 해결하지 않고 만남으로 초대하는 장면입니다.

성 바르톨로메오는 예수님의 열두 사도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매일미사는 그를 요한 복음에 등장하는 나타나엘과 같은 인물로 설명합니다.

오늘 복음의 시작은 필립보의 초대입니다. 필립보는 자신이 만난 예수님에 관해 나타나엘에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나타나엘은 처음부터 기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는 나자렛에 대한 자신의 선입견을 먼저 드러냅니다.

이 대목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와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합니다. 사는 지역, 직업, 말투, 가족관계, 과거에 들었던 소문까지 판단의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 사람을 만나기도 전에 결론을 내려버리면 그 사람의 새로운 모습을 볼 기회를 잃게 됩니다. 나타나엘 역시 그 상태로 돌아섰다면 예수님과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필립보는 상대의 의심을 억지로 꺾으려 하지 않습니다. 먼저 직접 와서 보도록 초대합니다. 신앙은 논쟁에서 이기는 일보다 만남을 통해 마음이 열리는 과정에 더 가까울 때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초대가 필요합니다. 오래 서먹했던 가족에게 한 번 더 말을 걸고, 성당에서 어색하게 지나쳤던 교우를 다시 바라보는 일입니다. 한 걸음 다가갈 때 예상하지 못했던 이해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3. 거짓이 없다는 말의 의미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의 겉모습보다 진실한 마음을 먼저 바라보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다가오는 나타나엘을 바라보시며 그에게 거짓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 우리는 먼저 완벽한 사람을 떠올릴지 모릅니다. 언제나 올바른 생각만 하고, 실수하지 않으며, 의심조차 하지 않는 사람 말입니다.

그러나 복음 속 나타나엘은 처음부터 완벽한 모습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는 나자렛을 향한 선입견을 드러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그를 배척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장면을 묵상하면 거짓 없는 마음이란 자신의 부족함을 감춘 채 훌륭한 신앙인처럼 보이는 태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됩니다. 의문이 있다면 의문을 인정하고, 진실을 만나면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우리도 하느님 앞에서 솔직해질 수 있습니다. 기도가 잘되지 않는 날에는 기도가 어렵다고 말씀드리면 됩니다. 가족에게 서운한 마음이 있다면 그 감정을 감추지 않고 주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솔직한 기도는 반드시 길거나 아름다울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 제 마음을 아시지요.” 이 짧은 한마디 안에도 충분한 믿음이 담길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불안하다면 그 불안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회복이 시작됩니다. 자신의 약함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약함도 더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4. 우리 삶의 무화과나무 아래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못한 삶의 조용한 순간을 상징하는 무화과나무 아래의 장면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던 모습을 이미 보았다고 말씀하십니다.

복음은 나타나엘이 그곳에서 정확히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가 무엇을 생각했는지, 어떤 기도를 했는지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묵상 안에서는 무화과나무 아래라는 자리를 우리 삶의 조용한 순간과 연결해 볼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생각이 머무는 자리,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하루를 견디는 자리 말입니다.

어떤 분에게는 새벽에 혼자 앉아 있는 부엌 식탁이 그러한 장소일 것입니다. 다른 분에게는 병원 진료를 기다리는 복도, 배우자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는 침대 곁, 먼저 떠난 가족을 그리워하며 사진을 들여다보는 저녁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삶에는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못하는 무화과나무 아래의 시간이 있습니다. 그 시간은 실패의 자리도, 부끄러움의 자리도 아닙니다. 감춰둔 외로움과 말하지 못한 사랑을 주님께 조용히 맡겨드릴 수 있는 자리입니다. 사람들은 알아주지 못하더라도 주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이러한 믿음은 모든 문제가 즉시 사라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외로움이 한순간에 없어지거나 관계가 저절로 해결된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홀로 떠안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습니다.

주님께 자신의 마음을 말씀드리는 순간, 감정은 정죄받아야 할 문제가 아니라 돌봄이 필요한 삶의 일부가 됩니다.

5. 신앙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드러납니다.

신앙이 가족을 향한 실제 사랑과 배려로 이어지는 모습을 표현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신앙생활을 성당 안에서만 생각합니다. 미사에 성실하게 참여하고, 기도문을 열심히 바치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는 일은 모두 소중합니다.

그러나 가정 안에서의 태도 역시 신앙과 분리할 수 없습니다. 성당에서는 친절하지만 배우자에게는 무심하다면, 교우의 이야기는 잘 들어주지만 자녀의 어려움은 가볍게 넘긴다면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랜 결혼생활에서는 사랑을 표현하는 말이 줄어들기도 합니다.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잘 안다는 이유로 표현을 생략하면 상대방은 자신의 노력이 당연하게 여겨진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내가 장을 보고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돌아왔을 때 먼저 짐을 받아드는 행동은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작은 행동에는 “당신이 힘든 것을 내가 보고 있다”라는 진심이 담길 수 있습니다.

식탁에서 “오늘 반찬 맛있네”라고 말하거나, 병원 진료를 앞둔 배우자에게 “내가 함께 갈게”라고 말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실한 사랑은 마음속에만 머무를 때보다 행동으로 표현될 때 상대에게 전달됩니다. 오늘 복음이 전하는 거짓 없는 마음은 이러한 일상의 작은 실천과도 연결됩니다.

6. 자녀와 이웃에게 마음을 전하는 방법

가족과 교우에게 먼저 다가가는 작은 인사가 복음의 실천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부담이 될까 봐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보고 싶어도 바쁠 것 같아 연락하지 않고, 도움이 필요해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물론 상대의 사정을 배려하는 마음은 소중합니다. 그러나 지나친 침묵은 서로의 마음을 오해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자녀는 부모가 정말 괜찮다고 생각하고, 부모는 자녀가 자신의 외로움을 모른다고 서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부담을 주지 않는 짧은 표현부터 시작해 보세요. “오늘 문득 네 생각이 났다.” “목소리를 들으니 반갑다.” “시간 될 때 얼굴 한번 보자.” 이러한 말은 상대를 압박하기보다 관계를 따뜻하게 이어줍니다.

성당 공동체에서도 비슷합니다. 늘 혼자 앉아 있는 교우가 보인다면 가볍게 안부를 물어보세요. “오늘 날이 많이 덥네요.” “미사 잘 드리셨어요?” 이 정도의 인사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큰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신앙을 전한다는 것은 어려운 설명을 늘어놓는 일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초대했던 것처럼, 상대가 스스로 마음을 열 수 있도록 따뜻한 자리를 내어주는 일도 소중합니다.

상대를 변화시키려고 서두르기보다 먼저 들어주고 함께 걸어가는 태도에서 복음의 향기가 드러날 수 있습니다.

7. 오늘 실천할 수 있는 세 가지

기도와 진심 어린 표현, 작은 나눔이 일상에서 실천되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첫째, 주님께 자신의 마음을 한 문장으로 솔직하게 말씀드려 보세요. “주님, 저는 요즘 외롭습니다.” “주님, 가족에게 서운한 마음이 있습니다.” “주님, 앞으로의 시간이 두렵습니다.” 감정을 잘 정리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꾸밈없는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둘째, 가까운 사람에게 진심을 표현해 보세요. 배우자에게 고맙다고 말하거나, 자녀에게 보고 싶다고 연락해 보세요. 오래된 갈등이 있다면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 하기보다 짧은 안부 한마디부터 시작해도 좋습니다.

셋째, 사랑을 행동으로 보여주세요. 반찬 한 접시를 이웃에게 나누거나, 성당에서 혼자 있는 교우에게 먼저 인사하거나, 집안일 한 가지를 조용히 맡아보세요. 작아 보이는 행동일수록 꾸준히 이어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실천은 억지로 자신을 바꾸기 위한 과제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이미 알고 계시는 우리의 마음을 삶 안에서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하루에 세 가지를 모두 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오늘 한 가지라도 시작한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습니다. 진실한 믿음은 거창한 결심보다 작지만 실제로 이루어진 사랑 안에서 자라기 때문입니다.

8.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의 기도

주님 앞에서 솔직한 마음을 나누며 함께 기도하는 부부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은 완벽한 사람이 되라고 우리를 몰아붙이는 날이 아닙니다. 주님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꾸미지 않고, 만남을 통해 조금씩 변화되는 신앙을 생각하는 날입니다.

나타나엘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이해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의문도 있었고 선입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초대에 응답했고, 예수님을 만났으며, 자신의 생각을 새롭게 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굳어진 습관이나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한마디의 기도와 작은 행동으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겉으로 보이는 강한 모습만 바라보지 않으십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마음과 오래 품어온 사랑까지 맡겨드릴 수 있습니다. 그 믿음 안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따뜻하게 다가가 보세요.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괜찮은 척하느라 오래 숨겨온 제 마음을 바라보아 주소서. 말하지 못한 외로움과 두려움을 주님께 맡겨드립니다. 제가 믿음을 말하면서도 가족에게 차갑게 대했던 순간을 돌아보게 하시고, 오늘부터 진실한 사랑을 작은 행동으로 표현하게 하소서.

배우자에게 고맙다고 말할 용기를 주시고, 자녀에게 먼저 안부를 전할 따뜻함을 주소서. 성당과 일상에서 만나는 이웃을 편견 없이 바라보게 하시며, 혼자 있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갈 마음을 주소서.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의 전구로 저희가 거짓 없는 마음으로 주님을 찾고, 받은 사랑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고감사, 참! 고맙고, 감사하며,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