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누가 더 큰가를 묻는 마음

우리의 하루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순위표가 있습니다. 가족을 위해 누가 더 많이 애썼는지, 성당에서 누가 더 오래 봉사했는지, 누구의 말이 더 자주 받아들여지는지 마음속으로 헤아립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인간적인 마음입니다. 오래 수고한 사람이 “고생하셨습니다”라는 말 한마디를 바라는 것도 자연스럽습니다. 오늘 복음은 그 마음을 꾸짖는 데서 출발하지 않습니다. 그 마음이 다른 사람을 보지 못하게 만들 때 무엇을 잃는지 살펴보게 합니다.
루카복음 9장 46절부터 50절에서 제자들은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고 다툽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길을 함께 걷지만 여전히 서로의 자리를 따집니다. 예수님께서는 강의처럼 순위를 다시 매기지 않으십니다. 어린이 한 명을 데려다가 곁에 세우십니다. 말보다 선명한 행동입니다. 우리가 경쟁하느라 미처 보지 못한 사람이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돌아보라는 초대입니다.
2. 어린이를 곁에 세우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를 당신 이름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당신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가르치십니다. 당시 어린이는 어른의 권한이나 지위를 가진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곁에 세우신 것은 제자들의 관심 밖에 머물기 쉬운 사람입니다. 따라서 오늘 말씀을 읽을 때 귀여운 어린이의 모습에서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말할 기회를 얻기 어려운 사람, 처음 와서 어디에 앉아야 할지 모르는 사람, 몸이 불편해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을 함께 떠올릴 수 있습니다.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라는 말씀은 다른 사람을 낮춰 평가할 새로운 기준을 주는 말씀이 아닙니다. 누구의 자리도 하찮지 않다는 선언으로 묵상할 수 있습니다. 내가 높아질 방법을 찾는 동안 작은 사람의 이름을 잊었다면, 오늘 그 이름을 다시 물어보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작은 이를 멀리서 가리키지 않으시고 바로 당신 곁에 세우셨습니다. 우리의 환대도 말뿐 아니라 앉을 자리와 들을 시간을 마련하는 행동이 되어야 합니다.
3. 다른 사람의 선한 일을 기뻐하기

복음의 뒤에서는 요한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하는 다른 사람을 막으려 했다고 말합니다. 그가 자기들과 함께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막지 말라고 답하십니다. 우리는 공동체의 책임과 질서를 지켜야 하지만, 다른 이의 선한 일을 내 방식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밀어내는 마음도 경계해야 합니다. 오랜 봉사자의 경험은 공동체에 꼭 필요합니다. 처음 시작하는 이의 새로운 생각 역시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성당 행사에서 젊은 교우가 새로운 방법으로 안내문을 만들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익숙하지 않아 어색해도 먼저 내용을 살펴보고 수고를 인정할 수 있습니다. 위험하거나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차분히 설명하고 함께 고치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했느냐”가 “누구에게 도움이 되느냐”를 가리지 않도록 하는 일입니다. 나의 노력이 인정받는 것과 다른 사람의 일이 열매 맺는 것은 서로 빼앗는 관계가 아닙니다.
4. 욥의 눈물을 서둘러 덮지 않기

제1독서 욥기 1장 6절부터 22절에는 욥에게 큰 상실이 연달아 닥칩니다. 욥은 옷을 찢고 땅에 엎드립니다. 슬픔의 몸짓입니다. 그는 상실을 아무 일 아닌 것처럼 포장하지 않습니다. 그 뒤에 나오는 하느님을 향한 고백을 읽을 때에도 그의 눈물을 건너뛰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이 전하는 장면은 고통받는 사람에게 빨리 의연해지라고 요구할 근거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라는 욥의 고백을 다른 사람의 상실에 설명처럼 들이밀면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 가족을 잃었을 때 그 원인을 자신 있게 해석할 사람은 없습니다. 옆에 앉아 함께 울고, 식사를 챙기고, 필요한 도움을 묻는 편이 더 가까운 사랑일 수 있습니다. 욥기를 읽는 우리는 상실의 이유를 다 안다고 말하기보다, 고통 앞에서 쉬운 답을 내려놓는 법을 배웁니다.
5. 60대 교우의 작은 실천

한 전형적인 상황을 생각해 봅니다. 오랫동안 성당 청소를 맡았던 60대 남성 교우가 무릎이 아파 일을 줄여야 합니다. 새 봉사자가 들어와 바닥을 닦고 물품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면 고맙지만 서운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하던 일이 자신의 자리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그는 새 교우의 이름을 묻고, 힘을 많이 쓰지 않는 정리 업무를 함께 합니다. 필요한 물품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 주고, 일을 마친 뒤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예전만큼 움직이지 못하지만 공동체에서 사라진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이 배운 것을 나누고 새로운 사람이 편히 머물도록 돕습니다. 작은 역할을 맡은 날에도 자신의 존엄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함께 봉사할 사람의 자리를 넓혀 주었습니다. 이런 사례는 우리 일상의 한 장면을 생각하기 위한 것이며, 어떤 특정한 교우의 실제 이야기를 옮긴 것은 아닙니다.
6. 가족과 이웃에게 자리를 내어 주기

가정에서도 작은 이를 대하는 태도가 드러납니다. 손주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려는데 어른들의 대화에 밀려 기다리고 있다면, 잠깐 멈추어 눈을 맞춰 주세요. 배우자가 같은 걱정을 되풀이한다면 “또 그 이야기야?”라는 말 대신 무엇이 가장 걱정되는지 물어보세요.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한 교우에게는 멋진 말을 준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생각나서 전화했어요. 어떻게 지내세요?”라는 안부로 충분합니다.
몸이 아픈 사람에게 필요한 도움을 먼저 물어보는 일도 중요합니다. 계단을 오르기 어렵다면 앉을 곳을 마련하고, 소리가 잘 들리지 않으면 조금 가까이에서 천천히 말할 수 있습니다. 성당에 나오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참석하지 못하는 이유를 캐묻기보다 함께 기도하고 복음을 전해 드리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환대는 상대에게 내가 바라는 모습을 요구하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실제로 놓인 자리를 살피는 일입니다.
7. 오늘의 기도와 디지털 선교

오늘 하루 세 가지를 실천해 봅시다. 지나치던 사람의 이름을 부릅니다. 다른 사람이 한 선한 일을 구체적으로 칭찬합니다. 슬퍼하는 사람에게 해석이나 훈계보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묻습니다. 이 가운데 하나만 해도 좋습니다. 힘든 날에는 먼저 내가 도움을 청해도 좋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환대하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환대받아야 하는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주님, 다른 사람보다 앞서려는 마음 때문에 제 곁의 작은 사람을 지나치지 않게 하소서. 욥처럼 상실을 겪는 이에게 성급한 답을 내놓지 않고 함께 머물게 하소서. 제 경험을 나누어 다른 사람이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게 하소서. 저 자신이 도움을 받을 때에도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소서. 아멘.”
2006년부터 이어 온 디지털 선교의 마음으로 매일미사 복음을 나눕니다. 몸이 불편하거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미사에 참례하지 못하는 형제 자매님께 오늘 말씀을 전해 주세요. 미사에 갈 수 있는 분은 공동체와 함께 전례에 참여하고, 갈 수 없는 분과도 안부와 기도로 이어져 있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작은 사람을 곁에 세우신 주님의 마음을 생각하며 오늘 한 사람의 자리를 마련합니다.
고감사, 참! 고맙고, 감사하며,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