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입 — 하루가 같아 보일 때

아침이 오면 우리는 전날과 비슷한 일을 시작합니다. 창문을 열고 물을 마시며 오늘의 일정을 떠올립니다. 일하는 시절에는 정해진 출근 시간과 성과가 하루의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은퇴 뒤에는 시간이 많아졌는데도 마음에 여유가 늘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건강을 챙겨야 하고 가족 소식을 기다리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궁금합니다. 휴대전화에는 하루에도 수십 가지 이야기가 올라옵니다. 정작 이 많은 정보가 내 마음을 평온하게 해 주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2026년 9월 24일 연중 제25주간 목요일의 제1독서는 코헬렛 1,2-11이고 복음은 루카 9,7-9입니다. 코헬렛은 모든 일이 되풀이되는 듯한 세상을 바라봅니다. 복음에서는 헤로데가 예수님에 관한 소식을 듣습니다. 두 본문 사이에는 공통 질문이 있습니다. 내가 듣고 쌓아 온 정보와 노력만으로 내 삶의 깊은 갈증을 채울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 질문을 두려워하기보다 차분히 바라보려 합니다.
코헬렛이 들려주는 정직한 한계

코헬렛은 거침없이 인간의 수고를 묻습니다.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며, 해가 뜨고 지고, 바람과 강물이 움직입니다. 이 모습을 오래 바라보면 내가 이룬 일이 얼마나 오래 남을지 생각하게 됩니다. 아무리 열심히 청소해도 집은 다시 어질러지고, 일을 마쳐도 새로운 일이 기다립니다. 젊은 날 목표를 이루었는데 은퇴 뒤에는 이전처럼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 말씀이 내 노력이 아무 가치가 없다고 선언한다고 읽으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코헬렛의 질문을 그보다 더 섬세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끝까지 통제하려고 할 때 지치기 쉽다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사람의 칭찬도, 건강도, 돈의 안정감도 소중하지만 영원한 안전을 보장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가벼운 낙관보다 정직한 성찰로 우리를 부릅니다.
예순이 지나면 몸과 생활의 변화가 이런 생각을 더 가까이 데려옵니다. 어제는 쉽게 올라가던 계단을 오늘은 천천히 올라가야 하고, 익숙한 사람의 이름이 곧바로 생각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 변화가 내 존재의 가치를 줄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없다는 사실과 지금 할 수 있는 사랑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함께 놓일 수 있습니다.
헤로데가 던진 질문

복음에서 헤로데 영주는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전해 듣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다른 설명을 내놓자 그는 당황합니다. 세례자 요한이 돌아왔다는 소리, 엘리야가 나타났다는 소리, 옛 예언자가 다시 살아났다는 소리가 들립니다. 헤로데는 자신이 요한의 목을 베었다고 말하며 예수님이 누구인지 묻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 짧은 장면에서 끝납니다.
이 짧음이 중요합니다. 본문이 말하지 않은 후속 이야기를 지어낼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가 예수님을 만나 회개했다고도, 그 질문이 완전히 진실하지 않았다고도 이 대목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복음이 보여 준 사실 앞에 머물면서 내 질문을 살피는 편이 도움이 됩니다. 예수님은 내게 누구이신가. 저는 그분의 말씀을 듣고 싶은가. 아니면 이미 내 마음에 있는 생각을 확인해 줄 말만 듣고 싶은가.
사람들 사이의 소문은 빨리 퍼집니다. 누군가를 직접 만나기 전에 평가가 먼저 오기도 합니다. 가족 안에서도 그렇습니다. “그 사람은 원래 고집이 세다”라는 말이 한 번 붙으면, 그가 달라진 모습을 보기도 전에 오래된 인상으로 대하기 쉽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질문 역시 남의 설명만 거듭 듣다 보면 나와 상관없는 먼 이야기가 됩니다. 복음의 문장을 직접 읽고 질문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양심을 듣는다는 것.

오늘 복음에는 세례자 요한의 죽음이 헤로데의 입으로 언급됩니다. 이 부분에서 자신이 했던 일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잘못을 했을 때 사람은 여러 반응을 보입니다. 변명하고 싶거나 상황을 탓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미안하다는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아 있으면서도, 먼저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상대방이 화를 내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양심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자신을 끝없이 책망하는 일이 아닙니다. 내가 건넨 말과 행동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고칠 수 있는 한 가지를 오늘 고르는 일입니다. 소문보다 사람을 직접 듣고, 변명보다 짧은 사과를 건넬 때 믿음은 생활 속에서 자랍니다.”
기도하면서도 불편한 기억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이때 모든 문제를 혼자 해결하겠다고 다짐할 필요는 없습니다. 직접 사과해야 할 일은 사과하고, 도움이 필요한 일에는 도움을 청하십시오. 오래된 갈등은 한 통의 전화로 해결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내가 먼저 바꿀 수 있는 말투, 듣는 태도, 편견을 알아차리는 일은 시작할 수 있습니다.
60대 교우의 평범한 하루

가상의 전형적인 사례를 들어 봅니다. 60대 후반의 한 교우는 은퇴한 뒤 아침마다 휴대전화로 세상 소식을 살폈습니다. 예전 직장 동료의 근황, 가족 단체방의 이야기, 새로운 건강 정보가 한꺼번에 들어왔습니다. 모르는 일이 없어야 안심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남의 소식을 많이 알수록 가족의 말을 느긋하게 듣기는 어려워졌습니다.
어느 날 며느리가 직장에서 힘든 일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습니다. 그는 사정을 끝까지 듣지 않은 채 “요즘 사람들은 참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상대가 실제로 무엇을 겪었는지 자신은 거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연락하는 것도 어색해 하루를 미뤘습니다. 저녁에 복음을 읽다 예수님에 관한 서로 다른 소문이 헤로데에게 들어오는 장면에서 잠시 머물렀습니다.
그는 다음 날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다 듣지도 않고 판단했구나. 미안하다. 이야기하고 싶으면 들어 줄게.” 상대가 즉시 마음을 다 열어 준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그는 그날 이후 가족 이야기를 들을 때 조언을 먼저 내놓지 않기로 했습니다. 통화가 시작되면 필요한 조언이 있는지 묻기 전에 일단 끝까지 듣는 연습을 했습니다. 믿음은 누가 더 옳았는지를 따지는 말싸움에서 조금 벗어나 한 사람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는 습관으로 이어졌습니다.
오늘 해 볼 수 있는 세 가지

첫 번째는 오늘 복음을 소리 내어 천천히 읽는 것입니다. 아주 짧은 대목이니 여러 번 읽어도 부담이 크지 않습니다. 헤로데가 묻는 부분에 잠시 멈춰 “예수님은 지금 제게 어떤 분이십니까?”라고 기도해 보십시오. 완벽한 답을 쓰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막막하다면 “주님,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듣고 싶습니다”라고 말해도 좋습니다.
두 번째는 남에 대한 판단을 잠시 미루는 것입니다. 단체방에서 누군가의 사연을 읽거나 가족의 전화를 받았을 때, 내가 들은 내용이 전부인지 돌아보십시오. 사실을 더 알아야 한다면 조심스럽게 직접 물어볼 수 있습니다. 당장 답을 내지 않는 태도는 무관심과 다릅니다. 한 사람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으려는 존중입니다.
세 번째는 양심에 걸리는 작은 일을 하나 고르는 것입니다. 며칠째 미뤄 둔 안부 전화가 있다면 걸어 보십시오. 날카롭게 말한 일이 있다면 변명 없이 사과해 보십시오. 고마웠던 일도 늦기 전에 전하십시오. 오늘 한 사람에게 건네는 한마디가 내 인생을 단숨에 바꾸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한마디를 통해 오늘의 관계가 조금 더 진실해질 수 있습니다.
기도할 장소를 찾는다면 성당의 제대 십자가 앞에 잠시 앉아 보십시오. 무릎을 꿇든 앉아 있든 몸과 눈길이 제대의 십자고상 쪽으로 향하게 하십시오. 숨을 고르며 “주님, 제 마음을 열어 주소서”라고 짧게 기도해 보십시오. 몸이 불편해 성당에 가기 어렵다면 집에서 성경을 펼치고 편안히 앉아도 좋습니다. 건강 상태에 맞게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기도와 마무리

오래 듣던 소문이 신앙의 전부가 되지 않도록, 오늘은 말씀을 직접 읽고 주님께 나의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헤로데가 던진 질문을 내 입으로 옮긴다고 해서 바로 모든 의심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질문을 주님 앞에 놓을 때, 그 질문이 사람을 정죄하는 도구가 아닌 나를 돌아보는 문이 될 수 있습니다. 코헬렛의 반복되는 세상 안에서도 오늘이라는 시간은 나의 책임과 사랑이 담길 자리입니다.
2006년부터 이어 온 디지털 선교의 마음으로, 몸이 불편하거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미사에 참례하지 못하는 형제자매님께 말씀의 위로가 닿기를 바랍니다. 들을 수 있는 날에는 이 묵상을 함께 듣고, 미사에 참례할 수 있는 분은 공동체와 함께 성찬례를 봉헌하십시오. 주변에 성당에 나오기 어려운 교우가 있다면 그분에게 안부를 전하는 것도 좋은 복음 실천입니다.
주님, 세상의 많은 말 속에서 당신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제 잘못을 깨달을 때 변명 대신 사과할 용기를 주시고, 같은 하루가 다시 와도 한 사람을 새롭게 사랑하게 하소서. 외롭고 아픈 형제자매님과 함께하여 주시고, 저희가 당신을 묻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오늘의 친절 속에서 알아 가게 하소서. 아멘.
오늘은 나에게 중요한 한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어 보십시오. 집으로 돌아와 무엇을 느꼈는지 한 줄 적어 보아도 좋겠습니다.
고감사, 참! 고맙고, 감사하며, 사랑합니다.
더 깊은 묵상을 위하여 영상으로도 즐기세요.
링크주소▶ https://youtu.be/dPL5x63ik_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