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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일기와 기도

성 비오 사제 기념일 묵상: 빈손으로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이유, 가난도 부유함도 아닌 ‘정해진 양식’을 청하는 기도, 루카복음 9장 제자 파견이 오늘의 시니어에게 주는 다섯 가지 실천

십자가 앞에서 마음의 보따리를 내려놓고 이웃을 향한 작은 파견을 받아들이는 60대 한국인 교우입니다.

도입 — 준비가 끝나지 않아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완벽한 준비를 기다리던 60대 교우가 십자가 앞에서 첫걸음을 결심합니다.

사람은 중요한 일을 앞두면 준비부터 생각합니다. 여행을 떠날 때는 필요한 물건을 챙기고,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는 돈과 지식과 경험을 점검합니다. 준비는 분명 중요합니다. 그러나 준비가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다 보면 정작 사랑해야 할 오늘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은퇴 뒤에는 예전의 직함과 인맥이 사라졌다는 이유로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느끼기 쉽습니다.

2026년 9월 23일은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입니다. 이날 매일미사의 복음은 루카복음 9장 1절부터 6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고 하십니다. 놀라운 점은 제자들에게 짐을 더 챙겨 주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길을 떠날 때 지팡이와 여행 보따리, 빵과 돈, 여벌 옷을 지니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무책임하게 살거나 현실적인 준비를 모두 버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복음의 일꾼이 소유와 자기 능력만을 안전의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초대입니다. 제자들은 파견하시는 분을 믿고, 자신들을 맞아 주는 사람과 공동체를 신뢰하며 길을 떠나야 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완벽함이 아니라 신뢰에서 첫걸음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복음의 배경 — 제자들은 무엇을 위해 파견되었나?

제자들은 자기 능력을 자랑하러 간 것이 아니라 주님께 받은 자비를 전하러 떠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셨습니다. 파견은 혼자 세운 계획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주님께 가까이 불려 와 말씀을 듣고, 주님께 받은 것을 가지고 떠나는 일입니다. 제자들에게 주어진 힘과 권한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악에 묶인 사람을 자유롭게 하고 병든 사람을 돌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한다는 것은 먼 미래의 이야기를 반복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다스림이 사랑과 자비와 진실의 모습으로 지금 이곳에 가까이 왔음을 보여 주는 일입니다.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나누고, 아픈 사람의 손을 잡으며, 죄책감에 짓눌린 사람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해 주는 행동 속에서 하느님 나라의 표지가 드러납니다.

제자들은 마을마다 찾아갔습니다. 복음을 기다리는 사람이 스스로 찾아오기만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몸을 움직이고 낯선 문을 두드리며 사람들의 생활 한가운데로 들어갔습니다. 오늘날에는 전화와 인터넷으로 멀리 있는 사람에게도 말씀을 전할 수 있습니다. 편리한 도구가 생겼지만, 상대의 마음을 존중하고 아픔을 오래 들어 주는 수고까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복음은 정보를 전달하는 일보다 관계를 맺는 일에 가깝습니다. 좋은 영상을 한 번 보내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그 뒤에 “말씀을 들으시니 어떠셨어요?”라고 묻고 대답을 들어 주는 일이 필요합니다. 디지털 선교가 진정한 복음 선포가 되려면 화면 너머의 한 사람을 조회 수가 아니라 하느님의 귀한 자녀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말씀의 핵심 — 왜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고 하셨을까?

가벼운 짐은 제자들이 주님과 공동체를 신뢰하며 걷도록 도와줍니다.

여행에 필요한 물건을 가져가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듣는 이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인간은 누구나 안전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돈과 음식과 여벌 옷은 실제로 유용합니다. 그러나 유용한 것이 마음의 주인이 되면 우리는 가진 것을 지키느라 파견의 목적을 잊을 수 있습니다. 더 좋은 대접과 더 편한 자리를 찾아다니다 보면 한 사람 곁에 충실히 머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느 집에 들어가면 그곳을 떠날 때까지 머물라고 하십니다. 이는 대접을 비교하며 더 좋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복음의 사람은 사람을 이용하지 않습니다. 소박하게 내어 준 환대를 감사히 받고, 한 관계에 충실히 머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배우자의 말을 끝까지 듣는 인내, 외로운 이웃에게 정기적으로 연락하는 꾸준함, 봉사 약속을 가볍게 취소하지 않는 책임감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거절당했을 때 발의 먼지를 털고 떠나라는 말씀도 중요합니다. 복음을 강요하거나 논쟁으로 상대를 굴복시키지 말라는 의미로 묵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초대하지만, 다른 사람의 자유까지 대신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선의를 거절당했을 때 원망과 모욕감을 오래 짊어지지 않고, 결과를 하느님께 맡긴 뒤 평화를 지키는 것도 제자의 자세입니다.

“복음 선포의 힘은 내가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나를 보내시는 주님을 얼마나 신뢰하며, 만나는 한 사람을 얼마나 귀하게 대하는가에서 드러납니다. 빈손은 무능력의 표시가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과 이웃의 환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손이 될 수 있습니다.”

제1독서의 지혜 — 정해진 양식이면 충분하다는 믿음

오늘 받은 양식을 알아보고 감사하는 마음이 불안과 탐욕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잠언 30장의 기도자는 두 가지를 청합니다. 허위와 거짓을 멀리해 달라고 하고,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말고 정해진 양식을 허락해 달라고 합니다. 가난 때문에 도둑질하여 하느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고, 풍요에 취해 “주님이 누구냐?” 하며 하느님을 잊지 않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가난을 낭만적으로 꾸미지 않습니다. 생존에 필요한 것이 부족한 현실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합니다. 동시에 재물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행복과 믿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인정합니다. 핵심은 ‘충분함’을 아는 마음입니다. 필요와 욕망을 구별하고, 오늘 받은 것을 감사하며, 남는 것을 이웃과 나누는 태도입니다.

노후에는 돈에 대한 불안이 커질 수 있습니다. 의료비와 생활비를 현실적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절제의 신앙은 재정 계획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무리한 욕심 때문에 위험한 선택을 하지 않고, 재산의 크기로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지 않으며, 필요한 도움을 정직하게 청하는 지혜입니다.

매일 저녁 오늘 받은 양식 세 가지를 기록해 보십시오. 먹을 수 있는 음식, 걸을 수 있는 힘, 안부를 물어 준 사람처럼 구체적으로 쓰는 것이 좋습니다. 감사는 문제를 부정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나를 붙드는 은총을 발견하여 불안이 인생 전체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연습입니다.

성 비오 사제 — 특별함보다 기도와 화해의 길

성 비오 사제는 기도와 경청으로 상처 입은 이들이 하느님의 자비를 만나도록 도왔습니다.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는 1887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카푸친 작은 형제회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기도와 겸손으로 하느님을 섬겼고, 고해성사를 통하여 많은 이가 죄를 고백하고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 새롭게 출발하도록 도왔습니다. 또한 가난한 이와 병자를 돌보는 일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성 비오 신부님을 떠올릴 때 신비로운 현상만을 강조하면 그의 삶이 건넨 가장 현실적인 초대를 놓칠 수 있습니다. 성인의 길은 매일 기도하고, 다른 이의 아픈 고백을 오래 들어 주며, 병든 이를 외면하지 않는 꾸준한 봉사였습니다. 그가 전한 복음은 화려한 말보다 화해와 돌봄의 행동으로 드러났습니다.

가정에서도 화해의 사도가 될 수 있습니다. 가족이 잘못을 털어놓을 때 곧바로 훈계하기보다 끝까지 들어 주십시오. 잘못을 없던 일로 만들 필요는 없지만, 한 번의 실수로 사람 전체를 규정하지 마십시오. “그랬구나. 많이 힘들었겠다. 함께 방법을 찾아보자”라는 말이 닫힌 마음을 열 수 있습니다.

병든 이를 돌볼 때도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려 하지 않아야 합니다.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면 의료진에게 연결하고, 지속적인 돌봄이 필요하면 가족과 본당 공동체, 지역의 도움을 함께 찾아야 합니다. 신앙의 돌봄은 치료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외롭지 않도록 곁을 지키고 희망을 북돋는 일입니다.

시니어 생활 사례 — 병원에 함께 간 두 시간

두 시간의 병원 동행이 외로운 이웃에게 하느님의 돌봄을 전하는 복음이 되었습니다.

60대 후반의 한 남성 교우는 은퇴 뒤 자신이 쓸모없어진 것처럼 느꼈습니다. 직장에 다닐 때는 많은 사람에게 전화를 받고 결정을 내렸지만, 이제 하루가 조용했습니다. 성경을 깊이 알지 못하고 말을 잘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본당 봉사도 망설였습니다. 그는 복음 선포는 특별한 교육을 받은 사람만 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어느 날 같은 아파트의 혼자 사는 교우가 무릎 통증이 심하면서도 병원 방문을 미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녀들이 멀리 살아 혼자 접수하고 검사를 받는 일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남성 교우는 처음에는 가족이 해결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을 보내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는 이웃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병원에 가겠다고 했습니다. 버스를 타고 접수를 도우며 대기실에서 이야기를 들어 주었습니다. 특별한 신앙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진료가 끝난 뒤 약국까지 동행하고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습니다. 이웃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가장 큰 힘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남성 교우는 그날 자신도 위로받았음을 깨달았습니다. 직함과 돈이 없어도 걸을 수 있는 두 다리와 들어 줄 귀, 함께할 시간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는 이후 매주 혼자 지내는 교우들에게 한 번씩 안부 전화를 했습니다. 누군가 아프면 본당 봉사자와 연결했고, 스마트폰 사용이 어려운 이에게 오늘의 복음 영상을 찾아 주었습니다.

이 사례에서 중요한 것은 영웅적인 행동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필요를 알아보고 지금 가진 것으로 응답한 것입니다. 복음 선포는 때로 설교보다 동행에 가깝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잊지 않으셨습니다”라는 말을 입으로 하지 않아도, 곁을 지키는 행동이 그 사실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오늘의 실천 — 파견받은 사람의 다섯 걸음

첫째, 마음의 보따리를 비우십시오. “준비가 완벽해야 한다”, “내가 대접받아야 한다”, “내 방식이 옳아야 한다”는 생각 가운데 하나를 골라 종이에 적으십시오. 십자가 앞에서 그 종이를 바라보며 주님께 맡기십시오. 비운 자리에 다른 사람의 필요가 들어올 수 있습니다.
둘째, 한 사람에게 먼저 연락하십시오. 최근 보이지 않는 교우나 외롭게 지내는 친지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지내세요?”라고 물으십시오. 대화를 내 이야기로 채우지 말고 상대가 말하도록 기다리십시오. 열 분의 경청도 훌륭한 봉사가 됩니다.
셋째, 구체적인 도움을 제안하십시오. 막연히 “필요하면 연락하세요”라고만 하지 말고 “수요일 오전 병원에 함께 갈까요?”, “장 볼 때 필요한 것을 사다 드릴까요?”처럼 선택하기 쉬운 도움을 말하십시오. 상대가 거절하면 섭섭해하지 말고 자유를 존중하십시오.
넷째, 오늘의 양식 세 가지를 감사하십시오. 건강, 음식, 사람, 시간 가운데 이미 받은 것을 찾아 적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를 나누십시오. 반찬 한 그릇, 차량 동행, 스마트폰 설명, 묵주기도 한 단처럼 지금 할 수 있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다섯째, 결과를 하느님께 맡기십시오. 친절을 거절당하거나 연락에 답이 없어도 자신을 실패자로 여기지 마십시오. 상대를 비난하지도 마십시오. 사랑으로 한 걸음을 내디딘 뒤에는 마음의 먼지를 털고 평화를 지키며 다음 사랑의 자리로 가십시오.

 

기도와 결론 — 우리는 모두 보냄을 받은 사람입니다.

미사에서 받은 말씀을 전화와 동행과 나눔으로 이어 가는 파견의 모습입니다.

세례받은 신자는 누구나 삶의 자리로 파견됩니다. 사제나 수도자처럼 특별한 직무를 맡지 않았더라도 가정과 이웃, 온라인 공간에서 복음을 살아 낼 수 있습니다. 믿음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정직과 친절, 경청과 나눔으로 하느님의 자비를 보여 줄 수 있습니다.

몸이 불편하거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미사에 참례하지 못하는 형제 자매님은 오늘의 말씀을 천천히 들으며 주님께 마음을 여십시오. 온라인의 말씀 콘텐츠가 공동체와 믿음을 잇는 다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미사에 갈 수 있는 분은 성당에서 성찬례를 봉헌하고, 성당에 오지 못한 교우 한 사람에게 안부를 물어 주십시오.

파견하시는 주님, 가진 것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사랑을 미루지 않게 하소서. 오늘 필요한 양식을 주시는 당신을 신뢰하고, 외롭고 병든 이에게 먼저 다가가게 하소서. 말로만 복음을 전하지 않고 경청과 동행과 나눔으로 당신의 나라를 보여 주게 하소서. 거절당할 때 원망하지 않고 결과를 맡기며, 성 비오 사제처럼 기도와 화해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 여러분의 전화 한 통과 한 걸음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양식이 될 수 있습니다.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지금 떠오르는 한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보십시오.

 

고감사, 참! 고맙고, 감사하며,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