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입 — 십자가를 피하고 싶은 우리 마음

사람은 누구나 편안하고 안전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나이가 들수록 몸이 예전 같지 않고 예상하지 못한 일이 늘어나기에, 더 이상의 고생은 피하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이 말이 때로는 무조건 참고 견디라는 요구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병을 치료하지 말아야 하는지, 부당한 관계에서도 침묵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워질 수 있습니다.
2026년 9월 20일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입니다. 이날 복음은 루카복음 9장 23절부터 26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려는 사람에게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인간의 생명과 존엄을 가볍게 여기라는 뜻이 아닙니다. 자기 욕심과 고집을 삶의 중심에서 내려놓고 사랑과 진리를 선택하라는 초대입니다.
순교자들의 삶을 제대로 기억하려면 그들이 죽음을 원했던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부터 보아야 합니다. 그들은 생명을 사랑했고 가족과 공동체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주신 하느님을 부정함으로써 목숨을 보존하는 길보다, 하느님께 충실한 길을 선택했습니다. 순교의 중심은 죽음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한국 교회의 특별한 시작 — 평신도가 받아들인 복음

한국 천주교회의 시작은 세계 교회사에서도 특별합니다. 18세기 말 학문을 연구하던 이들이 서학 서적을 통해 그리스도교 신앙을 접했고, 이승훈이 북경에서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뒤 돌아와 신앙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외국 선교사가 먼저 들어와 복음을 전한 일반적인 형태와 달리, 평신도들이 스스로 진리를 찾고 신앙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신앙 선조들은 교리를 배우고 책을 베껴 나누었으며, 멀리 떨어진 교우들을 찾아갔습니다. 신분 질서가 엄격했던 시대에 양반과 평민이 한 분이신 하느님의 자녀라는 가르침은 새로운 세상을 보여 주었습니다. 동시에 조상 제사 문제와 사회 질서에 대한 충돌로 혹독한 박해가 이어졌습니다. 수많은 신자가 재산과 가족, 사회적 지위를 잃고 목숨까지 바쳤습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한국인 최초의 사제로서 사목자와 교우들이 들어올 바닷길을 탐색하고 신자들을 돌보다 순교했습니다. 성 정하상 바오로는 평신도 지도자로서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신앙의 자유를 호소했습니다. 두 분뿐 아니라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신앙 선조가 삶의 자리에서 믿음을 지켰습니다. 오늘 우리가 편안히 성당을 찾고 성경을 읽을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선택과 희생 덕분입니다.
복음의 핵심 — 자신을 버린다는 뜻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자신을 버림은 자기혐오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고유한 인격과 재능을 없애는 것도 아닙니다. 여기서 버려야 할 것은 사랑을 막는 자기중심성입니다. 내 판단만 옳다고 여기고, 내 체면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며, 손해를 피하려고 진실을 외면하는 태도입니다.
날마다 십자가를 진다는 말에서 중요한 단어는 “날마다”입니다. 특별한 위기의 순간에만 믿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에서 꾸준히 예수님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배우자의 느린 걸음을 기다리는 일, 자녀의 말을 판단하지 않고 듣는 일, 가게에서 잘못 받은 거스름돈을 돌려주는 일, 아픈 이웃의 안부를 묻는 일도 사랑의 십자가가 됩니다.
“십자가는 나를 파괴하는 고통을 무조건 참는 도구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사랑과 진실을 선택할 때 기꺼이 감당하는 수고입니다. 자신의 존엄과 생명을 지키면서도 이기심과 거짓을 내려놓는 자리, 바로 그곳에서 우리는 날마다 예수님을 따릅니다.”
따라서 학대와 폭력을 참는 것을 십자가라고 부르면 안 됩니다. 위험한 관계에서는 먼저 안전을 확보하고, 믿을 만한 가족과 사목자, 상담 전문가나 관계 기관에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병이 있다면 적절한 진료와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도움을 받는 것은 믿음이 약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을 책임 있게 돌보는 일입니다.
제2독서의 약속 — 어떤 것도 사랑을 끊지 못합니다.

로마서 8장 31절부터 39절에서 바오로 사도는 연이어 질문합니다.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는지, 누가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을 고발하고 단죄할 수 있는지 묻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고 말합니다. 신앙인은 혼자 힘으로 모든 고통을 이겨 내야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보다 먼저 사랑하시고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그리스도께 기대는 사람입니다.
죽음도 삶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우리를 하느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다는 선언은 순교자들의 힘이 되었습니다. 이 약속은 오늘 상실을 겪는 사람에게도 필요합니다. 배우자를 먼저 보낸 뒤 빈집으로 돌아가는 사람, 건강을 잃어 이전처럼 활동하지 못하는 사람, 자녀와 연락이 끊겨 마음 아픈 사람도 하느님의 사랑 바깥으로 밀려난 것이 아닙니다.
감정으로 하느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 날에도 사랑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구름이 태양을 가려도 태양이 없어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기도가 메마르고 성당에 앉아 있어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때, 로마서의 말씀을 짧게 되뇌어 보십시오. “아무것도 나를 하느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이 고백이 문제를 즉시 없애지는 않지만, 문제 속에서 내가 혼자가 아님을 일깨워 줍니다.
시니어 생활 사례 — 고집을 잃고 가족을 되찾다.

60대 후반의 한 남성 교우는 평생 성실하게 일했고 가족을 책임졌습니다. 직장에서는 부하 직원에게 지시하고 결정을 내리는 일이 익숙했습니다. 은퇴한 뒤에도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은 자기 판단대로 해야 마음이 놓였습니다. 가족이 의견을 내면 경험이 부족하다며 말을 끊었고, 성당 봉사에서도 젊은 교우들의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당신 앞에서는 아무도 편하게 말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가족을 위해 살아왔다고 생각했기에 억울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반박하려다 잠시 멈추었습니다. 그날 미사에서 들은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십자가가 가족의 무조건적인 순종을 견디는 일이 아니라, 옳다는 고집과 체면을 내려놓는 일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다음 날 식탁에서 가족에게 사과했습니다. “내가 말을 끊고 내 생각만 옳다고 했구나. 미안하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가족이 말할 때 끼어들지 않겠다는 작은 규칙을 정했습니다. 말하고 싶은 순간에는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끝까지 들었습니다. 성당 회의에서도 가장 늦게 의견을 말하고 먼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수첩에 적었습니다.
처음에는 자기 존재감이 작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아내가 마음을 열었고 자녀들이 다시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성당의 젊은 봉사자들도 그의 경험을 더 편하게 물었습니다. 그는 권위를 잃지 않았습니다. 통제하려는 힘을 내려놓고 신뢰를 얻었습니다. 목숨을 잃고 목숨을 구한다는 복음의 역설이 평범한 가정에서 작은 모습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오늘의 실천 — 순교 신앙을 사는 다섯 걸음

첫째, 아침에 “오늘의 십자가”를 분별하십시오. 묵주나 작은 십자가를 손에 들고 사랑을 위해 감당해야 할 수고와 도움을 요청해야 할 위험을 구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무조건 참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찾는 것이 먼저입니다.
둘째, 가까운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으십시오. 대답을 준비하며 듣지 말고 상대가 말을 마칠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내가 옳다는 확신을 잠시 내려놓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 작은 자기 버림이 가정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습니다.
셋째, 신앙을 조용히 드러내십시오. 식사 전에 자연스럽게 성호를 긋고, 힘든 사람에게 기도를 약속하십시오. 상대에게 신앙을 강요하거나 논쟁에서 이기려 하지 마십시오. 친절과 정직, 책임 있는 삶이 가장 설득력 있는 증언입니다.
넷째, 잘못했을 때 변명 없이 사과하십시오. “그럴 뜻은 아니었다”는 해명보다 “내 말이 아팠구나. 미안하다”는 한마디가 관계를 살립니다. 체면을 잃는 것 같지만 사랑과 신뢰를 얻는 선택입니다.
다섯째, 잠들기 전 로마서의 약속을 되뇌십시오. 오늘 잘한 일과 부족했던 일을 주님께 말씀드린 뒤 “죽음도 삶도 저를 주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라고 천천히 고백하십시오. 실패한 날에도 하느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내일 다시 날마다의 길을 시작하면 됩니다.
기도와 결론 — 순교자의 후손답게 사랑하기

순교자들의 후손이라는 말은 과거의 영광을 자랑하는 칭호만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지 묻는 책임의 이름입니다. 가정에서 가장 온화한 사람이 되고, 약한 이의 목소리를 들어 주며, 손해가 생겨도 정직을 지키는 삶이 순교 신앙을 이어 가는 길입니다. 거창한 결단보다 날마다의 작은 충실함이 중요합니다.
몸이 불편하거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미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형제자매님께서도 말씀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미사에 갈 수 있는 분은 공동체와 함께 순교자들을 기억하고 성찬례를 봉헌하십시오. 그리고 성당 문을 나선 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사랑의 한 가지를 실천하십시오.
사랑이신 주님, 한국의 순교 성인들이 목숨을 다하여 지킨 믿음을 저희도 일상에서 충실히 살아가게 하소서. 고통을 미화하거나 생명을 해치는 일을 십자가라고 착각하지 않게 하시고, 사랑과 진실을 위해 감당할 수고를 기쁘게 받아들이게 하소서. 제 고집과 체면을 내려놓고 가족과 이웃의 말을 들으며, 아무것도 저희를 하느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음을 굳게 믿게 하소서. 아멘.
오늘 단 한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어 주고, 잘못한 일이 있다면 짧고 분명하게 사과해 보십시오. 순교자들의 믿음은 박물관 속 기억이 아니라 우리의 말과 손길을 통해 오늘도 살아납니다.
고감사, 참! 고맙고, 감사하며,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