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감사일기와 기도

내 작은 나눔이 헛되지 않은 이유: 루카 8,1-3 묵상, 예수님을 섬긴 여인들에게 배우는 조용한 사랑

60대 한국인 부부가 십자고상이 있는 제대를 정확히 바라보며 기도하는 전체 구도입니다.

알아주지 않는 수고도 의미가 있을까요?

드러나지 않는 수고가 공동체를 따뜻하게 지탱합니다.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면 남을 위해 쓴 시간이 참 많습니다. 자녀를 키우고, 배우자를 돌보고, 부모님 병원에 동행하고, 성당 공동체의 크고 작은 일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내가 이렇게 애쓴 것을 누가 기억할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몸은 예전 같지 않고 이름을 불러 주는 사람도 줄어들면 평생의 수고가 바람처럼 흩어진 듯 느껴지기도 합니다.

2026년 9월 18일 연중 제24주간 금요일 복음은 이런 마음에 조용하지만 분명한 답을 줍니다. 루카 복음 8장 1절-3절에는 예수님과 함께 다니며 자기들의 재산으로 그 일행을 섬긴 여인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연설을 하지 않았지만 복음 선포가 계속될 수 있도록 실제적인 도움을 주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사랑으로 드린 작은 수고가 하느님 안에서 얼마나 소중한지 보여 줍니다.

예수님과 함께 길을 걸은 여인들

여인들은 받은 은총을 행동으로 돌려드린 소중한 동행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열두 제자도 함께했지만, 루카 복음은 여러 여인의 이름도 분명히 기록합니다.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 헤로데의 집사 쿠자스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 그리고 이름이 전해지지 않은 많은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병과 고통에서 벗어난 뒤 예수님과 동행하며 자신들의 재산으로 공동체를 도왔습니다.

이 대목은 복음 선포가 몇몇 유명한 인물의 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알려 줍니다. 길을 떠나려면 먹을 것이 필요하고 쉴 자리와 여러 준비가 필요합니다. 누군가는 앞에서 말씀을 전했고 누군가는 뒤에서 필요한 것을 마련했습니다. 역할은 달랐지만 모두가 같은 복음의 길에 참여했습니다.

당시 사회 환경을 생각하면 이 여인들의 선택에는 용기도 필요했을 것입니다. 세상의 평판보다 예수님께 받은 은총을 더 귀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 감사가 재물과 시간과 행동의 나눔으로 이어졌습니다. 신앙은 마음속 감동에만 머물지 않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구체적인 손길로 드러납니다. 

부활 때문에 믿음은 헛되지 않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부활 때문에 우리의 믿음이 헛되지 않다고 선포합니다.

같은 날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죽은 이들의 부활을 의심하던 이들에게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복음 선포도 믿음도 헛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오로 사도의 결론은 절망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고 잠든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장식이 아니라 중심입니다. 부활이 있기에 죽음과 실패가 마지막 결론이 아닙니다. 사랑했지만 보답받지 못한 일, 기도했지만 당장 달라지지 않은 현실, 정성을 쏟았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봉사도 새로운 의미를 얻습니다. 주님께서는 그것을 영원한 생명 안에서 완성하실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현실을 외면하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늘 다시 사랑할 힘을 줍니다. 결과가 즉시 보이지 않아도 선을 선택하고, 관계가 서먹해도 먼저 손을 내밀며, 몸이 약해도 가능한 방식으로 기도하게 합니다. 부활 신앙은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께 삶을 맡기는 구체적인 신뢰입니다.

우리가 가진 재산은 돈만이 아닙니다.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시간과 삶의 지혜도 큰 재산입니다.

복음에서 여인들이 자기들의 재산으로 시중들었다는 말씀을 들으면 먼저 돈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물론 물질을 나누는 일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가진 재산은 훨씬 넓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말을 들어 줄 시간, 여러 해 살아오며 얻은 경험, 음식을 만드는 손재주, 컴퓨터나 휴대전화를 다루는 능력, 아픈 이를 위해 바치는 기도도 귀한 재산입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나눌 것이 줄어드는 것만은 아닙니다. 젊을 때는 돈과 힘을 더 많이 나눌 수 있었다면 지금은 기다려 주는 여유와 삶의 지혜를 나눌 수 있습니다.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고 들어 주는 태도는 외로운 사람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실패를 겪어 본 사람이 건네는 “괜찮습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라는 말은 값으로 계산할 수 없는 선물입니다.

“주님께서는 나눔의 크기보다 그 안에 담긴 사랑을 보십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정성껏 건넨 밥 한 끼, 안부 전화 한 통, 이름 없이 바친 기도 한 단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진 작은 것이 사랑을 만나면 복음을 전하는 통로가 됩니다.”

나눔은 자신을 무리하게 희생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건강과 형편을 살피며 기쁘게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됩니다. 때로는 도움을 받는 것도 공동체를 위한 겸손한 참여입니다. 받는 사람이 있어야 주는 사람의 사랑도 완성됩니다. 서로의 부족함을 받아들이며 함께 걷는 것이 교회의 모습입니다.

반찬 한 통과 안부 한마디

반찬 한 통과 다정한 안부는 외로운 이웃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혼자 사는 교우가 떠오르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연락을 미루는 경우가 있습니다. 거창한 위로를 준비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 문득 생각났습니다. 식사는 하셨어요?”라는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조언보다 안부가 먼저이고 해결책보다 함께 있어 주는 마음이 먼저입니다.

음식을 준비하다 반찬이 조금 넉넉하게 되었다면 작은 용기에 담아 가까운 이웃에게 건넬 수도 있습니다. 부담을 주지 않도록 “많이 해서 조금 나눕니다”라고 편안하게 말하면 됩니다. 성당에서는 혼자 앉아 있는 분에게 먼저 인사하거나 미사 뒤 의자와 성가책을 정리하는 작은 봉사도 가능합니다.

몸이 불편해 외출하기 어렵다면 집에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본당의 아픈 교우, 가족과 갈등 중인 사람,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며 묵주기도 한 단을 바칠 수 있습니다. 그 기도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공동체를 붙드는 든든한 사랑입니다. 중요한 것은 많은 일을 해내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지를 사랑으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오늘 실천할 다섯 가지

작은 실천을 적어 두면 좋은 마음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첫째,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한 사람 한 명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긴 통화가 부담스럽다면 짧은 문자도 좋습니다. “건강을 위해 기도합니다”라는 진심을 덧붙여 보십시오.

둘째, 내가 잘하는 일을 한 가지 적어 봅니다. 요리, 바느질, 운전, 스마트폰 사용, 글쓰기, 기도 가운데 무엇이든 좋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누구를 도울 수 있을지 생각합니다.

셋째, 성당에서 혼자 있는 교우에게 먼저 인사합니다. 상대가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따뜻한 눈맞춤과 인사는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라는 복음이 될 수 있습니다.

넷째, 섭섭했던 봉사를 주님께 다시 봉헌합니다. 알아주지 않았다는 마음을 숨기지 말고 솔직히 기도한 뒤 내가 한 일을 주님의 손에 맡깁니다.

다섯째, 자신의 한계를 존중합니다. 무리한 봉사는 오래가기 어렵습니다. 건강을 지키며 꾸준히 할 수 있는 작은 사랑을 선택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는 기쁘게 도움을 받습니다.

작은 사랑을 부활의 주님께

십자고상이 있는 제대를 향해 오늘의 작은 사랑을 봉헌합니다.

오늘 복음의 여인들은 자신들이 받은 은총을 섬김으로 돌려드렸습니다. 그들의 이름과 행동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복음 안에 살아 있습니다. 우리도 큰 업적을 남기지 못할 수 있지만 사랑으로 내어놓은 작은 몫은 주님 안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부활하신 주 예수님, 저희가 받은 은총을 기억하게 하시고 가진 것을 기쁜 마음으로 나누게 하소서. 사람의 인정을 받지 못해도 낙심하지 않게 하시며, 작은 친절과 기도와 봉헌이 당신 안에서 결코 헛되지 않음을 믿게 하소서. 지친 이에게 먼저 다가가고 도움이 필요할 때 겸손히 손을 내밀 수 있게 하소서. 저희의 일상을 복음을 전하는 따뜻한 길로 만들어 주소서. 아멘.

오늘 한 가지를 선택해 보십시오. 안부 전화, 반찬 나눔, 먼저 인사하기, 묵주기도 한 단 가운데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실천하면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우리의 작은 사랑을 받아 더 큰 희망의 열매로 키워 주실 것입니다.

 

고감사, 참! 고맙고, 감사하며,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