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입 —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아픔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받을 때 우리는 두 번 아픕니다. 그 사람이 아파서 마음이 무너지고, 내가 대신 아파 줄 수도 문제를 해결해 줄 수도 없다는 사실 때문에 다시 무너집니다. 병상에 누운 배우자의 손을 잡으면서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자녀가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바라보며 부모로서 부족했다는 자책에 빠지기도 합니다. 먼저 떠난 가족의 사진 앞에서는 지나간 한마디와 하지 못한 일이 되살아납니다.
2026년 9월 15일은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이날 교회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곁에 서 계신 성모님의 고통을 기억합니다. 부속가는 “아들 수난 보는 성모 맘 저미는 아픔 속에 하염없이 우시네”라고 노래합니다. 이 노래가 우리의 마음을 붙드는 까닭은 성모님도 사랑 때문에 깊이 아파하셨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한 사람도 슬픔 앞에서는 흔들립니다. 믿음이 좋으면 울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 눈물을 감추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은 눈물 없는 강함이 아니라 눈물 속에서도 사랑의 자리를 떠나지 않는 충실함을 보여 줍니다. 성모님의 모습은 슬퍼하는 사람에게 빨리 괜찮아지라고 재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는 네 아픔을 안다. 네 곁에 서 있겠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복음의 장면 — 십자가 곁에 서 계신 어머니

요한 복음 19장 25절부터 27절은 짧지만 매우 깊은 장면을 전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몇몇 여인, 그리고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가 서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두려움에 흩어진 상황에서 성모님은 아드님의 마지막을 지켜봅니다. 복음은 성모님이 어떤 말을 하셨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십자가 곁에 ‘서 있었다’고 전합니다.
성모님의 서 있음은 감정이 무뎌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들의 고통을 보면서도 아무렇지 않았다는 의미는 더더욱 아닙니다. 성모님은 마음을 칼로 찌르는 듯한 아픔 속에서도 예수님을 혼자 두지 않으셨습니다. 사랑은 때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아니라 떠나지 않는 충실함으로 나타납니다.
십자가 위의 예수님께서는 어머니를 보시고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사랑받는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라고 하십니다. 죽음이 관계를 끊어 버리는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관계를 맺어 주십니다. 성모님과 제자를 서로에게 맡기시며, 돌봄과 사랑으로 이어지는 새 가족을 세워 주십니다.
제1독서 — 눈물을 흘리며 배우신 순종

히브리서 5장 7절부터 9절은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다고 전합니다. 예수님은 감정을 숨긴 채 초인적으로 고통을 견딘 분이 아닙니다. 죽음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두려움과 아픔을 온전히 겪으셨고, 그것을 성부께 기도로 가져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다는 말씀은 아드님께서 불완전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삶과 수난 전체를 통하여 성부의 뜻에 끝까지 충실하셨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순종은 부당한 폭력에 무조건 굴복하라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사랑과 신뢰의 길을 포기하지 않으신 충실함입니다.
고통 자체가 선한 것은 아닙니다. 질병이나 사고, 폭력과 상실을 가볍게 “하느님의 뜻”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피해자에게 참으라고만 말하는 것은 복음적 위로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고통을 미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느님께서 고통받는 사람과 함께하시며, 사랑과 생명이 죽음의 마지막 말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희망을 보여 줍니다.
“신앙은 울지 않는 능력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셨고, 성모님께서도 아드님의 십자가 아래에서 마음이 찢어지는 아픔을 겪으셨습니다. 믿음은 아픔을 부정하는 일이 아니라, 눈물과 질문을 품은 채 하느님 곁을 떠나지 않고 고통받는 이의 곁에도 함께 서는 사랑입니다.”
상실을 겪은 사람에게 필요한 위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에게 가장 조심해야 할 말은 “이제 그만 잊으세요”라는 말입니다. 사람은 소중한 이를 물건처럼 잊을 수 없습니다. 슬픔에는 정해진 기간도 없습니다. 기일이나 생일, 함께 가던 장소를 지날 때 상실감이 다시 밀려올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이 부족해서도, 애도가 실패해서도 아닙니다.
성모님은 자녀를 잃은 부모의 마음 가까이에 계십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지켜본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슬픔에 잠긴 사람이 성모님께 기도할 때, 성모님은 쉬운 답을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을 아시며 함께 십자가 곁에 서 주십니다.
주변의 상실한 사람을 돕고 싶다면 설명보다 경청이 먼저입니다. “좋은 곳에 갔으니 그만 우세요”라는 말보다 “많이 보고 싶으시지요”라고 마음을 인정해 주십시오. 고인의 좋은 기억을 말할 때 피하지 말고 들어 주십시오. 기일을 기억해 짧은 문자 한 통을 보내는 것도 큰 위로가 됩니다.
시니어 생활 사례 — 지친 간병인이 도움을 청하기까지

한 70대 남성 교우는 아내가 큰 병으로 치료를 시작하자 모든 돌봄을 혼자 맡았습니다. 약 시간과 병원 예약을 챙기고, 식사를 준비하며, 밤에는 아내가 불편해할 때마다 일어났습니다. 자녀들은 멀리 살았고 그는 “아이들도 바쁜데 내가 해야지”라며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몇 달이 지나자 몸과 마음이 지쳤습니다. 어느 날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아내에게 짜증을 냈고, 곧 깊은 죄책감에 빠졌습니다. 자신은 좋은 남편도 좋은 신자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당에 가서 십자가를 바라보았지만 기도할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는 성모님이 십자가 곁에 서 계신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성모님 곁에도 사랑받는 제자와 여러 여인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예수님조차 어머니와 제자를 서로에게 맡기셨는데, 자신은 왜 모든 일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돌아보았습니다.
그는 자녀에게 매주 한 차례 병원 동행을 부탁했습니다. 본당 구역장에게도 사정을 알렸습니다. 한 교우는 반찬을 가져왔고, 다른 교우는 두 시간 동안 아내 곁을 지켜 주었습니다. 그는 그 시간에 잠깐 산책하고 잠을 보충했습니다.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다시 아내의 말을 들을 여유가 생겼습니다.
도움을 청하는 것은 사랑이 부족하다는 고백이 아닙니다. 오래 사랑하기 위하여 내 한계를 인정하는 지혜입니다. 도움을 받아야 다른 사람도 사랑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 아래의 새 가족은 한 사람이 모든 짐을 지는 공동체가 아니라 서로의 짐을 나누어 지는 공동체입니다.
오늘의 실천 — 십자가 곁의 사랑을 사는 다섯 가지

첫째, 말없이 십 분 곁에 있어 주십시오. 슬픔에 잠긴 사람을 만나면 해답을 서둘러 제시하지 마십시오. “얼마나 마음이 아프십니까. 제가 잠시 곁에 있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이야기를 기다리십시오. 침묵도 따뜻한 동행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 안부 전화 한 통을 드리십시오. 혼자 사는 교우, 병원에 다니는 이웃, 가족을 잃은 친척 한 명을 정해 “식사는 하셨어요? 오늘 생각나서 전화드렸습니다”라고 물어보십시오. 충고하기보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어 주십시오.
셋째, 구체적으로 도움을 청하거나 제안하십시오. 지친 보호자라면 “수요일 오후 두 시간만 함께 있어 주세요”라고 분명히 부탁하십시오. 돕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찬을 가져다드릴까요, 병원에 동행할까요?”라고 선택할 수 있도록 제안하십시오.
넷째, 눈물의 세 문장 기도를 바치십시오. 잠들기 전 천천히 호흡한 뒤 “주님, 저는 지금 아픕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도 아픕니다. 저희 곁을 떠나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십시오. 감정이 올라오면 억누르지 말고 눈물도 주님께 맡기십시오.
다섯째, 성모송을 한 번 천천히 바치십시오.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떠올리며 성모님께 예수님 곁을 떠나지 않는 충실함을 청하십시오. 작은 기도 한 번이 모든 현실을 바꾸지는 않아도,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을 다시 세워 줍니다.
기도와 결론 — 성모님, 저희 곁에 서 주소서

고통은 우리를 고립시키기 쉽습니다. 아무도 내 마음을 모른다고 느끼고, 도움을 청하는 것조차 미안해집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은 십자가 아래에 홀로 선 사람만 보여 주지 않습니다. 성모님과 제자, 여러 여인이 함께 서 있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서로에게 맡기십니다. 고통 속에서도 관계가 이어지고 사랑의 공동체가 태어납니다.
몸이 불편하거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미사에 참여하지 못한 형제 자매님도 오늘 말씀 안에서 성모님의 위로를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미사에 참여할 수 있는 분은 공동체와 함께 성찬례를 봉헌하며 아픈 교우 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해 주십시오. 온라인에서 말씀을 듣는 시간도 성당 공동체와 마음을 잇고 다시 기도할 힘을 얻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십자가 곁에 서 계신 고통의 성모 마리아님,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과 병든 가족을 돌보는 이들, 아무도 모르는 눈물을 흘리는 이들의 어머니가 되어 주소서. 주 예수님, 저희가 고통을 쉽게 설명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우는 이와 함께 울며 말없이 곁에 머물게 하소서. 혼자 모든 짐을 지려 하지 않고 서로에게 도움을 청하며, 외로운 교우에게 가족 같은 온기를 나누게 하소서. 눈물 속에서도 아버지를 신뢰하신 예수님의 순종을 배우고 부활의 희망을 놓치지 않게 하소서. 아멘.
오늘 연락처에서 외로운 사람 한 명을 찾아 안부 전화 한 통을 드려 보십시오. 돌봄에 지친 사람이 떠오른다면 반찬 한 접시나 한 시간의 동행을 구체적으로 제안하십시오. 우리가 누군가의 고통을 없애 주지는 못해도, 그 사람이 혼자가 아니게 할 수는 있습니다. 고감사, 참! 고맙고, 감사하며,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