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며: 오래된 잘못이 다시 떠오르는 밤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마음속에 보관된 장면도 많아집니다. 잘한 일도 있지만 다시 돌아가 고치고 싶은 일도 있습니다. 자녀에게 화를 내며 던졌던 말, 배우자의 수고를 당연하게 여겼던 시간, 가까운 사람의 어려움을 모른 척했던 순간이 문득 떠오릅니다. 고해성사를 보고 용서를 청했어도 “나는 왜 그랬을까?”라는 생각이 되풀이될 수 있습니다.
2026년 9월 17일 연중 제24주간 목요일 복음인 루카 7장 36-50절은 과거 때문에 고개를 들기 어려운 이들에게 희망을 줍니다. 죄인으로 알려진 한 여인이 예수님께 다가와 눈물로 발을 적시고 향유를 붓습니다. 사람들은 그 여인을 과거의 평판으로 판단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지금 드러난 믿음과 사랑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잘못을 가볍게 여기라는 뜻이 아닙니다. 진실하게 뉘우치되 하느님의 자비를 믿으라는 초대입니다. 회개가 과거를 바라보며 주저앉는 일이라면 복음이 될 수 없습니다. 복음의 회개는 주님께 방향을 돌리고 사랑을 향해 다시 걷는 일입니다.
복음의 배경: 판단의 식탁에 찾아온 자비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 시몬의 초대를 받고 그의 집에서 음식을 드십니다. 그때 죄인으로 알려진 한 여자가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들어옵니다. 그는 예수님의 뒤쪽 발치에 서서 울고, 눈물로 발을 적신 뒤 머리카락으로 닦으며 입을 맞추고 향유를 바릅니다. 오늘날의 식사 예절만 생각하면 장면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당시에는 낮은 식탁을 중심으로 몸을 기대어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발이 뒤쪽으로 향했습니다.
시몬은 이 모습을 보며 마음속으로 여인을 판단합니다. 예수님이 정말 예언자라면 자신을 만지는 여인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몬의 판단에는 두 가지 장벽이 있습니다. 그는 여인을 그의 과거와 동일시했고, 자기 자신은 용서가 덜 필요한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백 데나리온과 오십 데나리온을 빚진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두 사람 모두 빚을 갚을 능력이 없었지만 채권자는 둘의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채권자를 더 사랑하겠느냐고 물으셨고, 시몬은 더 많이 탕감받은 사람이라고 대답합니다. 이 비유는 하느님의 자비가 인간의 계산을 넘어선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더 나쁜 사람인지 비교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은총 없이는 설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용서와 사랑: 사랑으로 용서를 사는 것이 아니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라는 말씀을 잘못 이해하면 사랑을 많이 베풀어야만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중심은 거래가 아닙니다. 여인의 사랑은 용서를 사기 위한 대가가 아니라, 자비를 만난 사람이 드러낸 감사의 열매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얻기 위해 완벽해질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부족함을 인정하고 주님께 다가갈 때 용서의 은총을 체험합니다. 그 은총을 깊이 받아들일수록 다른 사람의 허물에도 조금 더 너그러워집니다. 나 역시 용서받은 사람이라는 기억이 교만한 판단을 멈추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용서는 과거를 없던 일로 꾸미는 값싼 위로가 아닙니다. 잘못을 진실하게 바라보게 하면서도 그 잘못이 우리의 마지막 이름이 되지 못하게 하는 새 출발의 은총입니다. 용서받은 사람은 죄책감에 머무르지 않고 감사에서 흘러나오는 사랑으로 오늘을 다시 살아갑니다.”
용서는 상처를 무조건 참으라는 말도 아닙니다. 폭력이나 반복되는 해악이 있다면 안전을 확보하고 적절한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신앙의 용서는 악을 정당화하는 일이 아니라 미움이 내 삶의 주인이 되지 않도록 심판을 하느님께 맡기는 일입니다. 관계의 회복에는 상대방의 책임과 변화가 필요할 수 있지만, 내 마음을 증오에서 조금씩 자유롭게 하는 길은 오늘 시작할 수 있습니다.
제1독서의 빛: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1코린토 15장 1-11절에서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전한 복음의 핵심을 다시 알려 줍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되살아나셨다는 믿음입니다. 바오로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여러 제자에게 나타나셨고 마지막에는 자신에게도 나타나셨다고 증언합니다.
그는 자신이 교회를 박해했기 때문에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자기비하로 끝내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고백에는 성숙한 회개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과거를 숨기지도 않고, 과거가 미래를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습니다.
시니어 세대에게 이 말씀은 특별한 위로가 됩니다. 이미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후회가 더 크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남은 시간이 짧다고 해서 사랑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건넨 사과 한마디, 손주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준 십 분, 아픈 교우를 위해 바친 묵주기도 한 단은 은총 안에서 새로운 열매가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남은 날을 과거의 벌로 주신 것이 아니라 사랑할 기회로 맡기셨습니다.
시니어의 생활 묵상: 나와 이웃에게 붙인 낡은 이름표

우리는 사람을 기억할 때 이름보다 사건을 먼저 떠올리곤 합니다. “돈 문제로 나를 힘들게 한 친척”, “내 편을 들어 주지 않은 자녀”, “인사해도 반응이 차가운 교우”라는 이름표를 붙입니다. 그 이름표가 오래될수록 상대가 달라질 가능성을 보지 못합니다. 예수님 시대 사람들도 복음의 여인을 한마디로 “죄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붙인 이름표도 있습니다. “좋은 부모가 아니었다”, “신앙이 약하다”, “배운 것이 부족하다”, “이제 쓸모가 없다”라는 말입니다. 이런 판단은 겸손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하느님께서 열어 주시는 가능성을 닫습니다. 바오로는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은총으로 일할 수 있다는 사실도 믿었습니다.
오늘부터 이름표를 바꾸어 보면 어떨까요? “나는 실패한 사람이야.” 대신 “나는 자비를 입고 다시 배우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해 보십시오. “저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아.” 대신 “주님, 제가 모르는 그의 사정과 눈물도 당신은 아십니다.”라고 기도해 보십시오. 말 한마디가 즉시 감정을 바꾸지는 못해도 마음의 방향을 바꿀 수 있습니다.
오늘의 실천: 용서받은 사랑을 세 가지 행동으로

첫째, 십자고상을 바라보며 용서를 믿는 기도를 바칩니다. 성당에 갈 수 있다면 조용한 자리에 앉아 십자고상이 있는 제대를 똑바로 바라보십시오. 집에서는 작은 십자고상 앞에 앉아도 좋습니다. 숨을 들이쉬며 “주님, 당신의 자비를 믿습니다.”라고 하고, 내쉬며 “저의 죄책감을 맡깁니다.”라고 세 번 기도합니다. 고해성사가 필요한 죄가 떠오르면 본당의 고해 시간을 확인하고 차분히 준비하십시오.
둘째, 한 사람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연락처를 천천히 살펴보고 오래 마음에 걸렸던 사람이나 혼자 지내는 교우 한 명을 정합니다. 긴 말을 준비하지 않아도 됩니다. “문득 생각나서 전화했습니다. 건강은 어떠세요?”라는 말이면 충분합니다. 내 사과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해명부터 하지 말고 상대가 받은 상처를 인정하는 한 문장을 먼저 전합니다.
셋째, 저녁에 사랑의 흔적을 기록합니다. 공책에 “오늘 받은 자비”와 “오늘 나눈 사랑”을 한 줄씩 적습니다. 건강히 눈뜬 일, 누군가의 미소, 식탁의 한 끼도 받은 자비입니다. 배우자에게 차를 내어 드린 일, 운전 중 양보한 일, 교우를 위해 기도한 일도 나눈 사랑입니다. 이 기록은 내가 얼마나 훌륭한지 확인하는 점수표가 아니라 은총이 일상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발견하는 감사 일기입니다.
기도와 결론: 평안히 가거라.

복음의 마지막 말씀은 “평안히 가거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을 계속 무릎 꿇려 두지 않으십니다. 일으켜 세워 삶의 자리로 보내십니다. 용서는 과거를 반복해 심문하는 방이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는 세상으로 나가는 문입니다.
우리도 오늘 그 문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관계가 있고 마음에 남은 상처가 있어도, 주님의 자비를 믿는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습니다. 내 힘만으로 모든 것을 바로잡으려 하지 말고 은총에 기대십시오. 바오로를 사도로 다시 세우시고 눈물 흘린 여인에게 평화를 주신 주님께서는 우리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자비로우신 예수님, 저의 과거와 상처를 모두 아시는 주님께 나아갑니다. 잘못을 숨기지 않되 절망에 머물지 않게 하시고, 고해성사와 기도 안에서 주님의 용서를 깊이 믿게 하소서. 다른 사람을 과거의 허물로 판단하지 않게 하시며, 제가 받은 자비를 따뜻한 말과 작은 사랑으로 나누게 하소서. 오늘 저에게 “평안히 가거라.” 하시는 말씀을 듣고 다시 시작하게 하소서. 아멘.
고바우영감, 고감사, 참! 고맙고, 감사하며,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