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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일기와 기도

2026년 9월 7일 매일미사 복음 말씀, 묵상 —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이유, 묵은 누룩을 치우고 새 반죽이 되십시오: 루카복음 6장 묵상

실수를 지켜보는 굳은 시선을 거두고 아픈 이에게 도움의 손을 내미는 오늘 복음의 핵심을 표현합니다.

도입 — 우리는 무엇을 보려고 사람을 바라보는가?

사람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실수가 먼저 보이기도 하고 숨은 아픔이 먼저 보이기도 합니다.

같은 사람을 바라보아도 마음의 방향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달라집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면 피곤한 얼굴과 말하지 못한 걱정이 보입니다. 그러나 미워하는 마음으로 보면 작은 실수와 약점부터 눈에 들어옵니다. 누군가를 이미 ‘문제 있는 사람’으로 정해 두면 그가 잘하는 일은 당연하게 넘기고, 잘못하는 순간만 기다리듯 지켜보게 됩니다.

2026년 9월 7일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복음은 루카복음 6장 6절부터 11절입니다.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시는데, 그곳에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습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도 그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관심은 그의 고통이나 치유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다가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면서도 병자를 피해서 몰래 치유하지 않으십니다. 그를 회당 한가운데 세우고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과 남을 해치는 것, 목숨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가운데 무엇이 합당한지 물으십니다. 그리고 병자에게 “손을 뻗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가 손을 내밀자 다시 성하여졌습니다.

복음의 장면 — 논쟁 뒤에 가려진 한 사람

손은 일상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음식을 먹고, 옷을 입고, 일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붙잡을 때 손을 사용합니다. 오른손을 자유롭게 쓰지 못했던 복음 속 남자는 생활의 불편뿐 아니라 생계와 관계의 어려움도 겪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복음이 말하지 않는 구체적인 사정을 함부로 만들어 낼 수는 없지만, 그의 오랜 고통을 헤아리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회당의 지도자들은 한 사람의 삶보다 예수님을 고발할 규정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율법을 소중히 여긴 데 있지 않습니다. 율법을 해석하면서도 그 계명을 주신 하느님의 자비를 보지 못한 데 있습니다. 안식일은 하느님의 창조와 해방을 기억하며 사람에게 쉼을 주는 날입니다. 고통에서 한 사람을 풀어 주는 일은 안식일의 목적과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뜻을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한가운데 세우신 행동도 중요합니다. 그 사람은 더 이상 논쟁의 소품이나 고발의 증거가 아닙니다. 이름 없는 환자로 구석에 머물지 않고 존엄한 한 사람으로 공동체 중앙에 섭니다. 예수님은 모두가 그의 아픔을 보도록 초대하십니다. 우리가 규정과 절차를 논의할 때도 그 결정의 영향을 받는 실제 사람을 한가운데 두어야 합니다.

두 가지 굳음 — 손은 펴졌지만 마음은 닫혔다.

예수님은 규정 논쟁 뒤에 가려진 병자를 공동체 한가운데 세워 그의 존엄과 아픔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오늘 복음에는 두 종류의 굳음이 나타납니다. 한 사람의 오른손은 육체적으로 굳어 있었습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마음은 자비를 향해 굳어 있었습니다. 병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 손을 뻗었고 치유되었습니다. 그러나 지도자들은 눈앞의 회복을 보고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골이 잔뜩 나서 예수님을 어떻게 할지 의논했습니다.

몸의 굳음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도움을 청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굳음은 스스로 옳다고 믿게 만들기에 더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의 선행을 보고도 흠을 찾고, 누군가 회복되어도 축하하지 못하며, 내 판단이 틀렸음을 인정하기 싫어한다면 마음이 굳어지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도 사람을 지켜볼 때가 있습니다. 새 봉사자가 일을 제대로 하는지, 며느리나 사위가 예의를 지키는지, 자녀가 약속을 또 어기는지 지켜봅니다. 관심과 책임 때문에 살펴볼 수 있지만, 실패를 기다리는 마음이 섞이면 관계가 달라집니다. 상대는 나의 눈앞에서 늘 시험받는 사람처럼 느끼고, 실수하지 않으려 긴장하다가 더 움츠러듭니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약한 손을 주님께 내밀어 회복되었지만, 굳은 마음의 사람들은 자비를 거부했습니다. 참으로 위험한 굳음은 몸의 불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치유를 보고도 기뻐하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손을 뻗어라’ 말씀하시며 감춘 상처와 굳은 판단을 당신께 내밀라고 초대하십니다.”

제1독서의 묵은 누룩 — 작다고 방치한 마음

묵은 누룩을 치우고 새 반죽을 준비하는 모습은 악의와 거짓을 버리고 순결과 진실로 새로워지는 회개를 상징합니다.

코린토 1서 5장 1절부터 8절에서 바오로 사도는 공동체 안의 심각한 잘못과 그것을 방치하는 자만을 꾸짖습니다. 그는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린다”는 비유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묵은 누룩을 치우고 새 반죽이 되라고 권고합니다. 여기서 누룩은 공동체 전체에 퍼지는 악의 영향을 보여 줍니다.

우리 마음에도 작다고 여겨 방치한 누룩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향한 섭섭함을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습관,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전하는 소문, 다른 사람의 실패에서 느끼는 은근한 만족, 나만 옳다는 교만입니다. 처음에는 작은 감정처럼 보이지만 오래 두면 말투와 표정, 관계 전체를 부풀립니다. 결국 그 사람이 무엇을 해도 좋게 보이지 않습니다.

묵은 누룩을 치우는 것은 무조건 덮거나 잊는 일이 아닙니다. 잘못을 진실하게 인정하고 필요한 책임을 지며 주님께 회개하는 것입니다. 공동체의 심각한 문제는 적절한 절차와 책임 있는 지도 아래 바로잡아야 합니다. 동시에 사람을 미워하고 파괴하는 방식이 아니라 구원과 회복을 지향해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다고 말합니다. 새 삶의 근거는 내 의지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받아들일 때 악의와 사악을 버리고 순결과 진실로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시니어 생활 사례 — 실수가 아니라 아픈 손을 보다.

실수를 감시하던 교우가 아픈 손을 발견하고 곁에서 돕자 봉사와 관계가 함께 회복되었습니다.

한 70대 남성 교우는 본당 봉사 경험이 많았습니다. 어느 날 새로 들어온 봉사자가 준비 순서를 자주 묻고 물건을 제자리에 놓지 못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속으로 “저 사람은 기본도 모르면서 왜 봉사를 맡았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음에는 또 무엇을 빠뜨리는지 보겠다는 마음으로 그를 지켜보았습니다.

며칠 뒤 새 봉사자가 무거운 상자를 옮기다가 갑자기 손목을 감싸며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알고 보니 얼마 전 손목 수술을 받았지만 봉사자가 부족하다는 말을 듣고 무리해서 나왔던 것입니다. 남성 교우는 그제야 자신이 실수만 보느라 아픔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즉시 상자를 받아 들며 말했습니다. “제가 사정을 몰랐습니다. 오늘은 무리하지 마세요. 제가 함께하겠습니다.” 그리고 봉사 절차를 큰 글씨로 간단히 정리해 주었습니다. 다음 몇 주 동안 곁에서 천천히 알려 주었습니다. 새 봉사자는 점차 익숙해졌고 두 사람은 좋은 동료가 되었습니다.

규칙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준비는 더 정확해졌습니다. 달라진 것은 시선이었습니다. 실수할 사람을 감시하는 눈이 배우는 사람을 돕는 눈으로 바뀌었습니다. 지적하려던 손이 무거운 짐을 들어 주는 손으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치유입니다.

오늘의 실천 — 눈에서 손으로 옮겨 가기

마음속 묵은 감정을 솔직히 적고 축복기도를 바치는 작은 실천이 굳은 마음을 풀어 줍니다.

오늘 누군가의 부족함이 눈에 들어오면 바로 평가하지 말고 세 가지 질문을 해 보십시오.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을까?”, “지금 이 사람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도움은 무엇일까?” 이 질문은 잘못을 무조건 괜찮다고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살리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마음의 방향을 바꾸어 줍니다.

그다음 작은 손길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성당에서 무거운 의자를 옮기는 교우를 도울 수 있습니다. 새 교우에게 미사책의 위치를 조용히 알려 줄 수 있습니다. 병원에 다녀온 이에게 짧은 안부 문자를 보낼 수 있습니다. 가족의 실수를 지적하기 전에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네고 사정을 물을 수 있습니다.

마음속 묵은 누룩을 치우는 실천도 필요합니다. 수첩에 버리고 싶은 마음 하나를 적으십시오. 오래된 악의, 험담, 비교, 고집 가운데 하나면 됩니다. 그리고 그 감정이 생긴 이유를 주님께 솔직히 말씀드리십시오. 억지로 좋은 감정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 아직 용서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미움이 제 마음 전체를 부풀리지 않게 도와주소서”라고 기도하십시오.

가능하다면 미워하는 사람을 위한 축복기도를 한 문장만 바쳐 보십시오. “주님, 그 사람에게 필요한 은총을 베풀어 주소서.” 이 기도는 상대의 모든 행동을 인정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 마음을 악의에 내어 주지 않고 하느님께 맡기는 선택입니다.

기도와 결론 — 오늘 내 손이 좋은 일을 선택하도록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좋은 일을 선택하셨습니다. 사람들의 오해와 공격을 피하기 위해 치유를 뒤로 미루지 않으셨습니다. 생명을 살리고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는 일이 하느님의 뜻임을 분명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에게도 거창한 기적보다 지금 필요한 선한 행동을 선택할 용기를 주십니다.

오늘 우리의 눈은 무엇을 찾고 있습니까? 누군가의 잘못입니까, 숨은 아픔입니까? 우리의 손은 무엇을 붙들고 있습니까? 오래된 미움입니까, 도움이 필요한 이웃의 손입니까? 주님은 오그라든 우리 마음을 한가운데 세우시고 부드럽지만 힘 있게 말씀하십니다. “손을 뻗어라.”

생명을 살리시는 예수님, 다른 사람의 실수를 기다리며 지켜보았던 저를 용서하소서. 아픈 사람보다 규정을 앞세우고, 도움보다 지적을 먼저 선택했던 굳은 마음을 풀어 주소서. 제 안의 악의와 사악이라는 묵은 누룩을 치우고 순결과 진실의 새 반죽이 되게 하소서. 오늘 제 눈이 이웃의 숨은 아픔을 발견하고, 제 손이 좋은 일을 선택하며, 제 입술이 위로와 격려를 전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 한 사람의 부족함을 지켜보는 대신 작은 도움 하나를 건네 보십시오. 무거운 짐을 들어 주고, 서툰 이를 가르쳐 주고, 외로운 이에게 안부를 물으십시오. 내민 손 하나가 다른 사람의 하루뿐 아니라 내 굳은 마음도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고감사, 참! 고맙고, 감사하며, 사랑합니다.